AstroPilot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인 러시아 전자음악가 Dmitriy Redko의 앨범. 일렉트로닉을 바탕으로 다양한 장르적 경험을 공유하는 드미트리의 음악을 하나의 단어로 지칭하기는 어렵다. 다만 그의 음악은 강한 표제적 성격과 더불어 일련의 줄거리로 이어지는 듯한 내러티브가 존재한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때문에 유형적으로 그의 음악이 앰비언트나 IDM 등으로 분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결국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음악적 언어로 표현하기 위한 여러 방식들 중 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드미트리가 대중적으로 친숙하게 된 계기로는 단연 여러 연작으로 발매된 Solar Walk와 Star Walk 시리즈들이 아닐까 싶은데, 타이틀이 상징하는 몽환적인 메시지와 더불어 그 안에 펼쳐진 다양한 이야기들이 많은 사람에게 매력적으로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Earthwalk라는 타이틀로 발매된 이번 앨범은 기존 연작들과 다른 음악적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를 엿볼 수 있으며, 동시에 기존 작업의 표현을 확장하려는 노력의 한 방식으로 보이기도 한다. 기존 시리즈에서 보여준 앰비언트적인 스텐스는 이번 작업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며, 다만 강한 상징성을 지닌 여러 효과와 사운드가 타이틀이 지닌 표제적 성격을 부각하고 있다. 개별적인 사운드는 저마다의 텍스쳐와 펄스를 지니고 있어 주변 자연의 다양한 현상들을 청각화하며, 여기에 노이즈나 이펙트 혹은 필드 리코딩의 요소들을 더해 시각과 촉각의 감각을 자극하기도 한다. 구성과 진행은 복잡하지 않은 대신 일련의 플로우 속에서 개별 곡의 제목에서 드러나는 소소한 테마를 부각하려는 듯한 세밀한 조율이 이루어지며, 이와 같은 미세한 변화들을 통해 나름의 소박한 음악적 내러티브를 완성한다. 물론 ‘걷다’ 혹은 ‘산책’이라는 단어의 특성을 반영하기라도 하듯, 이번 앨범에서도 그 속도에 맞는 BPM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나름의 일관성을 보여준다. 때문에 앨범은 전체적으로 주변 자연에서의 일상이 반영된 듯한 평온한 분위기를 보여주는 동시에, 중첩된 사운드들이 이루는 공간적인 하모니로 인해 다분히 몽환적인 명상을 경험하게 하는 이중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다. 몰입을 가능하게 하는 강한 흡입력을 지녔으면서도 마음 한 구석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매력적인 작업이다.
2022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