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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Barre Phillips & György Kurtág Jr. - Face à Face (ECM, 2022)

 

미국 베이스 연주자 Barre Phillips와 헝가리 전자음악가 György Kurtág jr.의 듀엣 앨범.

 

1924년생인 바레는 1960년대 초에 데뷔하여 뉴욕 재즈 씬의 실험적인 창작에 참여했고 이후 유럽으로 이주하여 50년 이상 프랑스에서 거주하는 동안 프리 임프로바이징의 표현을 중심, 시대를 상징하는 일련의 중요한 성과를 선보인다. 90 가까운 고령이라 올해 초 활동 무대였던 유럽을 떠나 미국으로 다시 이주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죄르지는 일렉트로닉을 이용해 클래식의 현대적 입지를 확장하는 작업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뮤지션으로, 부모님은 헝가리의 저명한 클래식 피아니스트 György와 Márta Kurtág이며 여동생은 ECM에서도 다수의 카탈로그에 작품을 기고한 사진작가이기도 하다.

 

이번 앨범은 그 타이틀 때문에 지난 바레의 솔로 녹음 End To End (2018)을 연상하게 하지만, 공간 구성이나 표현에서는 이번 작업만의 고유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서로 다른 장르적 경험을 공유하며 타협 가능한 현실적 공간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임프로바이징과 전자음악의 결합은 다분히 실험적인 표현주의적 성향을 포함하고 있으며, 아방가르드 한 영역 내에서도 각자의 임프로바이징을 동시에 포착하는 신중한 모습을 담아내기도 한다. 바레에게 있어 전자음악과의 협업이 흔한 예는 아니지만, 1960년대 말 이후부터 간헐적이지만 비교적 꾸준히 시도해온 전례가 있으며, 이번 작업 역시 그 연장 속에서 해석할 수 있는 여지 또한 충분히 개방하고 있다.

 

죄르지의 이전 ECM 릴리즈인 Kurtágonals ‎(2009)나 최근의 작업인 Creation ‎(2019)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그는 현대 작곡 혹은 현대 음악의 관점에서 전자음악의 표현과 특징을 수용하는 접근을 보여주고 있어, 흔히 말하는 모던 클래시컬의 경향적 특징이나 통상적인 일렉트로닉과는 다른 음악적 결을 지닌다. 그의 음악은 협연을 통한 상호 개입을 특징으로 하고 있어, 시퀀싱이나 프로그래밍을 위주로 진행하는 일상적인 전자음악의 방식과는 다른 자율적 능동성을 지니기도 한다. 죄르지는 2014년부터 바레를 염두에 둔 더블 베이스와 신서사이저 및 일렉트릭 퍼커션의 협업을 위한 작업을 준비했다고 밝히고 있다. 거장 또한 음악 제작의 창의적인 접근을 모색하며 Centre Européen Pour l'Improvisation을 설립하여 주변 음악인들과의 지속적인 상호 교류를 이어왔는데, 죄르지와의 이번 협업 또한 이와 같은 맥락에서 가능했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때문에 바레와 죄르지의 협업은, 그 조합 자체가 전달하는 의외성에도 불구하고, 둘의 경험과 전례를 통해 충분한 예측 가능성을 전제하고 있으며, 사실상 임프로바이징의 표현을 구조화한, 혹은 전자음향을 활용한 공간적 구성 속에서 즉흥적인 모티브의 능동적 개입을 적극 수용한 작업의 특징을 보여준다고도 볼 수 있다. 죄르지는 이를 “건축학적 이미지”라고 요약하고 있어, 능동적 표현의 배후에는 인터랙티브 한 반응과 일련의 체계적 구조화를 위한 합의가 존재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베이스는 자신의 고유한 표현 외에도, 어택에서 릴리스에 이르는 울림을 세밀하게 조율하여 마치 전자음악의 엔벨로프를 연상하게 하는 섬세한 주법을 응용하거나, 보우를 이용해 신서사이저의 피치 밴딩을 모사하는 등, 전자음향적 특징을 반영하고 이에 대응하는 풍부한 개입을 보여준다. 죄르지는 공간 개념에 주목하면서도 묘사적인 사운드스케이프 대신 짧고 분할적인 간결한 표현을 이용해 유동적인 섬세함을 완성하고 있다. 베이스의 서스테인을 길게 확장하거나 그 릴리스에 새로운 어택을 더하는 등의 유기적인 긴밀함은 물론, 바레와의 대칭적인 분할을 통해 공간을 확장하는 과감함도 포함하는데, 특히 전자 타악기로 연출하는 다양한 유형의 퍼커시브 한 표현을 통한 개입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는 듀오의 이미지를 복합적으로 완성하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자율적인 상호 의존성을 이용한 접근처럼 보이는 외형에도 불구하고, 긴밀함과 정교함이 얽혀 체계화된 구조처럼 안정적인 형상을 완성하고 있으며, 바레와 죄르지 각자의 경험 또한 온전한 형식으로 담겨 있어 인상적인 앨범이다.

 

 

2022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