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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Be Still the Earth - Colored Grey (Valley View, 2022)

Be Still the Earth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인 미국 멀티 인스트루먼트 연주자 겸 작곡가 Marshall Usinger의 미니 앨범. 마셜은 주로 멀티미디어와 영상 관련한 다양한 작업에 참여한 것으로 전해지며 시각 예술적 경험과 관련한 시네마틱 한 오케스트레이션에 주안점을 둔 여러 음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에 비해 BStE 프로젝트는 앰비언트적인 시각에서 서술된 음악적 경험을 들려주는데, 애트모스페릭 한 텍스쳐의 요소들과 감미로우면서도 명료한 멜로디를 활용해 사색적인 공간을 연출한다는 특징을 보여준다. 그에 따르면 시네마 틱 한 포스트-록과 얼터너티브 인디 팝 사이의 간격을 연결하는 사운드라고 표현하지만, 마셜이 이야기한 것과 같은 음악적 특징과는 조금은 거리가 느껴지며, 개인적으로는 시네마틱 한 사운드 스케이프가 주를 이루는 앰비언트 계열의 장르적 경향성에 더 가깝다는 인상을 준다. 몽환적인 텍스쳐로 깊게 깔리는 드론과 그 위에 부유하듯 흐르는 멜로디의 대칭적 조화는, 그 차분하면서도 명상적인 분위기로 인해 슈게이즈 특유의 관조적 태도를 보여주는 것처럼 느끼기도 하여 포스트-록과 관련한 본인의 언급이 일정 부분 수긍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그만큼 단순한 듯하면서도 동시에 다면적인 인상으로 표출되는 그의 음악은 깊은 사색의 공간을 개방하는 매력을 지닌다고 봐도 무방하다. 드론, 사운드 스케이프, 멜로디, 노이즈, 이펙트 등 다양한 요소들은 저마다의 고유한 텍스쳐를 지니고 있으며, 이들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은 채 각자의 특징적 형상을 간직하며 본래의 호흡에 따른 일련의 플로우를 연속한다. 진행 속에서 자연스럽게 조우하는 듯한 이러한 요소들은 차분하면서도 밀도 있는 레이어링을 이루고, 이러한 중첩을 통해 이어지는 연속의 흐름은 은은한 배경을 지닌 시각적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도 나름의 빌드-업을 구축하고 시적인 분위기의 내러티브를 완성하기도 하여, 시네마틱 하다고 이야기할 부분도 존재하는데, 그 분위기는 극적이라기보다는 명상적인 형상에 가깝기 때문에 정적인 평온함에 기댈 수 있는 휴식과 안정이 매력적으로 전해지는 것이 특징이다. ‘채색된 잿빛’이라는 타이틀이 처음에는 중2병적 감성처럼 느껴졌지만, 음악을 듣다 보면 그 의미에 쉽게 공감할 수 있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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