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tflix 오리지널 시리즈 1899 (2022)의 OST 앨범.
Dark (2017-2020) 시리즈를 창조한 Baran bo Odar와 Jantje Friese 파트너가 새롭게 선보인 시리즈물로, 유럽에서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향하는 대형 여객선 Kerberos 호와, 4달 전에 실종된 Prometheus 호에 얽힌 미스터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야기는 시대물로 시작해, 미스터리 스릴러물로 이어지고, 결국에는 보다 광대한 세계관으로 연결되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의 과거의 기억과 현재가 중첩을 이루며 거대한 이야기의 구조를 완성하고 있다. 인물들 각자 여객선에 탐승할 수밖에 없는 사연과 관련한 과거 기억은 존재하지만, 정작 케르베로스 호에 어떻게 올랐는지에 대한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으며, 특히 4달 전에 실종되었던 프로메테우스 호와의 관계를 통해 하나의 순환적인 사건 구조를 암시하지만, 기존 ‘다크’ 시리즈에서 경험했던 것처럼, 이번 이야기 또한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큰 규모로 확장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고, 마지막 장면에서 이미 예고하기도 했다.
다국적 캐스팅과 배우들 모두 각자의 언어로 연기하는 장면은 마치 구약의 바벨탑을 붕괴에 이르게 한 신의 형벌을 연상하게 하지만, 인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 아무 문제없이 자연스러운 의사소통을 이어간다. 종교와 관련된 몇몇 설정과 인물은 존재하지만, 극 중에서 사용하는 은유와 상징은 종교적이라기보다는 신화적인 인상이 강하다. 이는 시뮬레이션의 설계, 창조, 조작, 해체 등이 어느 한 창조자에 의한 것이 아닌 가족 관계에 얽힌 인물들에 의한 것으로 그리고 있어, 다분히 신화적인 세계관을 차용했다는 인상을 주기도 하며, 직접적으로 사건이 벌어지는 두 여객선의 이름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여러 면에서 ‘1899’는 ‘다크’와 많이 닮았다. ‘다크’가 한 아이의 실종에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한다면 ‘1899’는 한 아이의 발견에서부터 미스터리로 전개된다. ‘다크’가 과거-현재-미래의 연관에 대한 설정에서 시작했다면 ‘1899’는 그 창조와 현실적 존재에 대한 의문을 플라톤의 동굴이나 시뮬레이션이라는 매트릭스적인 개념을 통해 제기한다. 의문의 편지, 모든 것은 다시 반복될 것이라는 설정, 결박 의자, 각자의 비밀을 간직한 등장인물, 시공간을 넘나드는 미궁과 같은 좁은 통로, 신화적인 은유와 상징, 얼굴을 다친 남성, 삼각형, 먼 미래에서 끝을 맺는 시즌 1, 그리고 나이 든 요나스를 연기했던 Andreas Pietschmann이 에이크 선장으로 출연한다. 그리고 이번 작품에서도 Ben Frost가 스코어를 담당하고 있다.
이번 시리즈는 각 에피소드가 끝날 때마다 Jefferson Airplane의 “White Rabbit”, Deep Purple의 “Child in Time”, Echo & The Bunnymen의 “The Killing Moon”, Blue Öyster Cult의 “Don’t Fear the Reaper”, Black Sabbath의 “The Wizard”, Jimi Hendrix의 “All Along the Watchtower”, Cat Stevens의 “The Wind” 등과 같이, 곡 그 자체로 시대적 상징성을 지닌 고전을 활용하고 있다. 이는 에피소드의 엔딩 장면이 주는 충격을 더욱 증폭하는가 하면, 다음 회에 이어질 이야기에 대한 자연스러운 암시를 하는 등, 시리즈 전체를 통해 강한 임팩트를 남기기도 한다. 특히 시즌 1의 전체 엔딩에 해당하는 장면에서 David Bowie의 “Starman”이 나오는 순간, 다음 시즌의 이야기가 어떤 배경 속에서 펼쳐질 것인가에 대해 충분히 예상할 수 있게 된다. 아쉽게도 이번 OST 앨범에는 수록되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는 ‘기억 속에 존재’했던 곡들을 다시 회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인 선곡이기도 하다.
때문에 극의 스코어를 담당한 벤의 역할이 상대화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시리즈 전체의 초현실주의적인 배경과 공간을 청각적으로 완성하는 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역할은 무척 훌륭하다. 스코어는 증기 여객선을 마치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표현하며, 이에 걸맞은 음침하면서도 공포스러운 캐릭터를 인상적으로 묘사한다. 관악, 현악, 타악, 보이스 등은 물론 이국적인 민속 악기 등을 포함한 풍부한 소스들의 조합을 통해 주요 인물이나 여러 상황에 대한 불안과 긴장 등을 음악적으로 완성하고 있다. 아일랜드, 영국, 그리스, 폴란드 등 여러 나라에서 서로 다른 앙상블 및 연주자들과 함께 녹음을 진행했다고 하는데, 이는 마치 다국적 등장인물들을 벤 나름의 방식으로 반영했다는 인상을 주기도 하며, 실제로 극 중에서는 음악적 묘사의 구체적 섬세함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곡의 제목 또한 각기 다른 언어로 되어 있으며, 해당 장면의 묘사에서 핵심을 이루는 상징적인 사운드를 전면에 부각함으로써 극의 몰입을 유도하기도 한다. 때로는 집합적인 매시브 한 연주처럼 들리면서도 개별 악기가 지닌 고유한 색과 질감을 포함하는 사운드는 무척 생생하여, 거대한 사건과 마주친 극 중 개별 인물의 표정을 모두 담아내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하며, 특히 거대한 철조 구조물에 의해 반사되는 듯한 자연스러운 리버브는, 이 모든 이야기들이 실제 증기 여객선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현실적인 느낌까지 생생하게 표현하기도 한다.
주인공 아버지가 구입한 세 척의 여객선 중 나머지 하나에 대한 설명이 없고, 여전히 의문스럽게 남아 있는 가족 관계, 특히 주인공의 오빠에 관한 이야기 등, 이번 시즌에서 아직 회수하지 않은 몇 가지 떡밥은 물론 여전히 남아 있는 궁금증 때문에 혼란스러운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다크’의 경험에 비춰본다면 이어질 시즌을 통해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새로운 공간 배경에서 펼쳐질 다음 시즌에서는 벤의 섬세한 기괴함이 어떤 형식으로 발현될지 기대된다.
2022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