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ound

Ben Lukas Boysen & Sebastian Plano - Everything (Erased Tapes, 2017)


독일 작곡가 벤 루카스 보이센과 아르헨티나 출신 세바스티안 플라노의 Erased Tapes 신보. 총 43개의 트렉에 3시간을 훌쩍 넘기는 러닝타임의 이 앨범은 영화 감독 David OReilly가 제작한 게임 Everything을 위한 음악을 담고 있다. 감독 자신의 2분 30초 짜리 단편 영화 The Horse Raised by Spheres (2013)의 모티브를 확장시켜 완성한 게임은 바이러스에서 우주의 별까지 모든 사물이 되어 관찰자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차츰 감정과 감각을 넓히면서 자기 주변의 타자에 대해 지각을 확장한다는 철학적 내용을 담고 있다. 10분 길이의 게임의 트레일러에는 영미 철학자 Alan Watts의 생전 음성이 나레이션으로 사용되었고 이례적으로 비엔나 단편 영화제 애니메이션 부문 심사위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데뷔 이후 15년 가까이 매년 꾸준한 활동을 보였던 루카스와는 달리, Denovali 레이블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던 두 장의 앨범 이후 달리 공개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플라노의 경우 4년 만에 음반으로 모습을 보인 것이다. 이들 두 뮤지션은 음악가 가정에서 자랐고 어렸을 때부터 받은 교육과 훈련이 바탕이 된 음악적 재능은 물론 음악의 여백 사이에 사색의 공간을 담아 정서적으로 깊이 있는 느낌을 전달하는 등 많은 공통점이 느껴진다. 이번 앨범에서의 음악 그 자체만 보면 모호한 공간감과 신비한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진행과 형식에서의 서술적 성격보다는 묘사적 특징이 강하다. 실제로 게임 속에서의 개별 곡들은 캐릭터 그 자체에 의해 구성되기 보다는 그 사물(혹은 생명체)이 속해 있는 상황이나 공간의 특성을 나타내기 위한 일종의 청각적 장치이기도 하다. 그만큼 음악 그 자체가 묘사하고 있는 세상은 다양하지만, 두 뮤지션을 비롯해 감독이 함께 공유하는 인식론적 시각이 반영된 음악적 텍스처 는 높은 순도가 느껴질 만큼 단일하다. 게임 자체가 표방하고 있는 세계관도 흥미롭지만 그 안에 담겨진 음악 역시 그 자체로 귀기울여 볼 가치 또한 충분하다. 앨범 안에서 만큼은 음악이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2017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