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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Benjamin Lackner - Last Decade (ECM, 2022)

 

Benny Lackner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독일계 미국 피아니스트 Benjamin Lackner의 ECM 데뷔 앨범.


미국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벤저민은 10대 초반 미국으로 이주하여 전문 재즈 피아니스트로서의 교육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때문에 그의 피아노는 현대 미국 재즈의 주류 스타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경향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으며, 키보드를 활용한 표현의 확장은 물론 트리오를 중심으로 하는 활동을 생각해본다면 벤저민의 음악적 멘토인 Brad Mehldau의 영향력을 일정 부분 확인할 수 있기도 하다. 이 외에도 벤저민은 현지의 유명 뮤지션들의 다양한 작업에 참여함으로써 나름의 음악적 입지를 넓혀가기도 한다.


Benny Lackner Trio로 명명된 벤저민의 트리오는 2000년대 초에 미국에서 결성되었고, 독일로 이주한 이후에도 그 명맥은 비교적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다. 15년 가까운 기간에 트리오의 이름으로 모두 6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했고, 그중에는 이번 녹음에도 참여하고 있는 베이스 Jérôme Regard와의 작업 3장도 포함하고 있다. 때문에 이번 앨범은 기존 트리오의 확장이라는 성격을 지니기도 하며, 벤저민 또한 어쿠스틱을 중심으로 하는 피아노의 친밀성을 강조하며, 트럼펫  Mathias Eick과 드럼 Manu Katché가 참여한 이번 쿼텟 작업의 특징을 정의하기도 한다. 


형식적으로는 제롬과 함께했던 기존 트리오의 확장이라는 모습을 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티아스와 마누와 같은 뮤지션을 포함한다는 것은 단순한 외형의 확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의미하기도 한다. 실제로 이번 앨범은 기존 트리오에 트럼펫을 더한 기능적 확장으로 단순화하기 어려운 새로운 공간적 합의를 전제하고 있으며, 벤저민이 언급한 어쿠스틱 사운드와 피아노의 친밀성 또한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진 자기표현의 절제라고도 볼 수 있을 듯하다. 트럼펫의 공간을 전면의 리드 보이스로 배치하는 동시에 베이스와 드럼의 자율 공간을 개방하는 과정에서 피아노의 역할을 새롭게 정의하는 벤저민의 음악적 실천을 이번 작업에서 확인할 수 있는 셈이다. 두 개의 멜로디 라인으로 구성 가능한 다양한 방식에 대한 여러 접근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한편, 개별 공간의 자율성 안에서도 앙상블의 내밀한 표현을 응집하는 기본 축으로써의 역할을 인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피아노의 역할은 작곡의 의지에 의해 실현되는 부분 외에도, 각 멤버들의 능동적 개입을 통해 완성되는 과정을 앨범 곳곳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호른과 건반의 대위적인 공간 배열과 프레이즈 안에서 피아노의 왼손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이어지는 베이스의 인터랙티브 한 워킹이나, 플로우의 긴장과 이완을 섬세한 터치를 통해 묘사하는 듯한 이미지너리 한 드럼 등은, 개인적 창의와 쿼텟의 집합적 앙상블 사이에서 보여줄 수 있는 인상적인 균형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러한 공간의 조율 자체가 새로운 방식은 아니지만, 벤저민의 이번 앨범은 개별 공간의 자율성을 단순히 즉흥적 모티브의 확장으로 치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앙상블의 내밀함을 완성하기 위한 구조의 다양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나름의 고유함을 발견할 수 있다.


자율성을 전제로 하면서도 나름의 구조화된 체계를 유지하는 엄밀함을 보여주고 있어, 그 안에서 미묘하게 표출되는 음악적 텐션은 그 자체만으로도 강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 과정에서 신선하게 선보이는 즉흥적인 음악적 합의는 물론,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서정적인 시적 표현과 내밀한 미적 긴장은 앨범을 매력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요소임은 분명하다.

 

 

2022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