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전자음악가 Geir Jenssen의 앨범. 60대를 향하는 가이르는 앰비언트 계열에서 이미 고전적인 인물에 해당한다. 북유럽 특유의 감성을 결합해 자신만의 독특한 사운드 스케이프를 선보이며 독창적 위상을 구축했으며 해당 장르를 현대 음악의 중요한 요소로 사고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앨범 수록곡 대부분은 Ingun Bjørnsgaard의 현대 무용 "Uncoordinated Dog"을 위해 작곡된 것으로 베토벤의 현악 사중주 No. 14에 바탕을 둔 것으로 전해진다. 때문에 12개의 수록곡들은 다양한 현은 물론 고전 악기의 질감을 살려 녹음했는데, 베토벤의 고전주의적 형식 대신 스트라빈스키나 쇤베르크의 모더니즘을 연상하는 방식은 의외이면서도 흥미롭다. 원곡의 흔적을 찾기 어려울 만큼 추상을 통해 그 형식을 해체하고 가상악기를 통해 재현된 아날로그적 텍스쳐로 새로운 양식으로 재구성된다. 공간 구성 역시 실내악은 물론 그 제한에서 벗어난 넓은 활용을 보이며 자신의 사운드 앙상블을 표현한다. 사운드 레이어 사이의 섬세한 대칭과 대비로 연출되는 숨 막히는 긴장 속에서도 가이르 특유의 내밀한 정서는, 은밀하지만 명료한 방식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가이르의 바이오스피어 프로젝트가 현대 작곡 및 앰비언트 계열에서 우회할 수 없는 현상인지는 이 앨범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입증한다. 섬뜩할 만큼 눈부시고 아름답다.
2021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