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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Christian Balvig - Night Poem (Night Poem, 2023)

 

덴마크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Christian Balvig의 앨범.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난 크리스티안은 일찍부터 음악 경력을 시작했고, Emmeluth's Amoeba, Dyberg 4 Ra 등과 같은 재즈 밴드에서 피아니스트로 활동했으며 자신의 Christian Balvig 6-tet을 이끌기도 했다. 재즈 연주자 겸 임프로바이저로서의 활동 외에도 The Royal Danish Orchestra, Copenhagen Philharmonic, Danish Chamber Orchestra, Det Norske Blåseensemble 등과도 함께 했으며, 다큐멘터리나 영화 분야에서는 작곡 및 편곡으로 다수의 작업에 참여하거나 주도하는 등, 크리스티안은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은 경험을 제공하며 자신의 커리어를 확장하고 있는, 주목할 만한 젊은 음악인이다.

 

크리스티안의 첫 솔로 작업인 이번 앨범은, 지금까지 그가 선보였던 음악과는 다른, 그러면서도 그 모든 것들을 포괄하는 듯한, 인상적인 성과를 담고 있다. 분류의 편의상 모던 클래시컬 계열의 작업으로 구분할 수는 있겠지만, 그 안에는 클래식은 물론, 영화 작곡 및 편곡가로서 보여준 섬세한 진행을 포함해, 즉흥 연주자로서의 출중한 재능까지, 이 모든 것들을 마치 하나의 언어처럼 자연스럽게 녹여내고 있다. 총체성을 지니면서도 그 표현은 과잉하지 않으며, 다양한 장르적 요소의 혼합 속에서도 단일한 표현으로 드러나는 일체감은 무척 안정적이다.

 

크리스티안은 쉔베르크의 “Verklärte Nacht”를 모티브로 하는 현악 6중주 작곡을 의뢰받게 되었고, 이를 자신의 개인 공간으로 가지고 오면서 이번 앨범이 탄생한 것으로 이야기한다. 이번 작업에서 크리스티안은 마치 시간과 공간 개념을 음악에 도입한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과거의 음원을 되살려 녹음에 담아내고, 펠트 한 톤의 낡은 업라이트를 연주하거나, 필드 리코딩을 이용해 공감각을 유도하는 등의 다양한 요소들을 엿볼 수 있다. 실제로 일부 트랙에서는, 아버지가 어린 시절 사용했던 피아노로 가족 별장에서 녹음한 음원이 포함되어 있기도 하여, 음악 안에 개인과 사물의 시간과 역사를 담아낸 흔적도 찾을 수도 있다. 신서사이저나 전자 음향의 연출과 효과가 음악적 디테일을 완성하지만, 전체적으로는 피아노와 현악기를 바탕에 둔 기악 중싱의 편곡이 주를 이룬다. 특히 피아노의 경우 치밀한 구성 안에서의 자율적 모티브를 확장한 임프로바이징을 담아내기도 하여, 연주 중심의 특징을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내용을 음악적인 소제나 기술적인 접근으로 실현한 예는 많이 있지만, 크리스티안이 이번 앨범에서 보여준 방식은 무척 신선하다. 아날로그의 로우파이와 디지털의 하이파이의 단순한 레이어링이 아닌, 각각의 소스가 지닌 고유한 상징적 의미를 부각하고, 각각의 악기들이 마치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을 표상하는 듯한 모습으로, 저마다의 고유한 음향적 특징을 담아내고 있다. 개별적 캐릭터를 지닌 소스들은, 마치 현실 속에서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이 중첩을 이루며 마주한다. 그렇다고 그 모습은 멀티유니버스의 거대한 세계관을 담았다는 느낌보다는, 일상 속에서 기억과 현실이 충동하는 순간을, 다양한 감정과 복잡한 정서로, 마치 녹음 장치로 생생하게 포착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각 소스에 이펙터를 이용한 연출은 물론, 뮤트 톤의 업라이트와 같이 익숙한 악기를 낯설게 표현하기도 하고, 이어지는 현대적인 사운드와 모던한 리버브와의 중첩을 통해, 서로 다른 시공간이 교차하는 듯한 극적인 모습은, 음악적 구성으로 보더라도 무척 흥미롭고 신선하다.

 

라이브 녹음이 전하는 현장의 생생함과 프로듀싱을 통해 연출한 공간이 대비와 대칭은 무척 자연스럽고, 극적 분위기까지 고려하고 있어 섬세하다. 그만큼 서로 다른 시공간을 상징하는 듯한 각각의 사운드가 서로를 대면하는 방식은 다양하면서도, 이질감을 드러내지 않고, 현실 속에서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모든 요소들은 과거든 현재든, 이미 존재했거나 존재하는 현실이기 때문에, 이는 가상이나 상상과는 다른 그 자체로 하나의 실재를 구성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듯하다.

 

 

2023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