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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Christophe Leusiau - Drifting (iM Electronica, 2018)


프랑스 뮤지션 크리스토프 루시우의 신보. 10대 이전의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 음악 이론을 공부하고 악기 연주를 시작한 크리스토프는 당시 자신이 즐겨 들었던 전자 음악의 영향을 받아 자연스럽게 컴퓨터를 활용한 음악과 독창적인 작곡법을 익혔다고 한다. 2000년대 이후 데이비드 린치, 리들리 스콧, 베르너 헤어조크 등과 같은 감독의 영화에 영감을 받은 음악적 헌정 프로젝트 Sulfuric Saliva를 시작으로 현재는 영상 관련 작업을 비롯해 현대 무용 음악 등을 작곡하고 있다. 전작인 Les Nuits de Pierrevert (2017)의 경우 동명의 사진 페스티벌에 참석한 사진작가들의 전시 테마에 맞춰 음악적인 몽타주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처럼 간헐적으로 발매되는 크리스토프의 작업들은 주로 시각적 이미지와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번 앨범은 예외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시각적인 이미지나 동적 행위를 다루지 않고,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감정의 극복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크리스토프는 가까운 사람을 잃었을 때의 감정들을 과학이나 종교 대신 상실에 관한 시적인 접근으로 전환하려는 실천 행위를 '표류한다는 것'(dérive, drifting)으로 정의하고 있다. 앨범 전체는 죽음을 상징하는 "Charon"에서 시작하여 "Drifting"과 "Bridge" 등과 같이 표류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과정을 암시하는 테마로 이어지고 시간의 경과("Elapse")를 거치면서 마침내 종착점("Terminus")에 이르는 8개의 곡들로 이루어졌다. 이미 그 자체로 개별 곡들의 표제적 성격이 강조될 수밖에 없지만 묘사보다는 전체적인 시퀀스를 염두에 두기라도 한 듯 메이저-마이너 스케일을 번갈아 사용하여 기승전결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이어간다. 전자 악기의 사용을 근저에 두고 있지만 피아노나 현의 텍스처를 부각하여 정서적 접근에 보다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죽음을 둘러싼 과학적 합리성과 종교적 이원론의 근대적 결탁을 시적인 접근을 통해 해체할 수 없지만, 적어도 표류를 통해서 비껴갈 수 있는 대안이 있음을 크리스토프는 음악을 통해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2018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