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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Conrad Clipper - Heron's Book of Dreams (Luau, 2021)

독일 작곡가 겸 멀티 인스트루먼트 연주자로 알려진 Conrad Clipper의 앨범. 본명 여부가 모호한 콘라트 클리퍼는 활동명으로 알려져 있고 5년 전 Cycle Of Liminal Rites (2016)을 발표했다는 사실 외에 이 뮤지션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단조롭고 미니멀한 구성에 큰 기복 없이 관조적인 시선에서 덤덤하게 일상의 욕망을 기록한 듯한 음악의 톤 역시 5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여전히 꾸밈없고 진솔하다. 이 앨범은 애리조나주 Arcosanti에서 녹음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대규모 음악 행사에 뮤지션이 아닌 사진작가의 어시스턴트로 참여해 시간이 날 때마다 피아노와 신서사이저가 있는 '원형 창문이 있는 방'에 몰래 들어가 녹음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같은 녹음 배경에 대한 설명이 어떤 특별한 은유적 상징이나 부연을 위한 담론을 담고 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앨범의 타이틀이 암시하는 것처럼, 꿈이 없는 누군가 펼치는 무대를 '원형 창문'을 통해 바라보며 자신의 꿈을 기록하는, 조금은 서글프면서도 그에 비례한 만큼 아름답기도 한 이야기에 관한 것이다. 앨범 전체는 릴 테이프 녹음 과정에서 발생하는 아날로그 노이즈가 마치 배경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이것이 과연 어쩔 수 없이 수음된 소리인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리코딩된 것인지는 트랙에 따라 다소 모호하다. 다만 이는 마치 꿈을 형상화하는 구체적인 장치처럼 느껴지기도 하며, 다양한 이야기들로 이루어진 앨범 전체를 하나의 내러티브로 엮어내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때로는 매커니컬 노이즈처럼 들리기도 하면서 어느 순간에는 마치 필드 리코딩처럼 자연스럽게 주변의 소리들을 트랙에 반영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악기들의 연주 앞으로 나서는 법은 결코 없으면서도 전체적인 음악의 텍스쳐를 지배하는 역할을 하고 있고, 어쩌면 '꿈'이라는 메타포를 가장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사운드적인 요소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와 같은 장치가 없었다면 피아노나 현악기의 사운드는 단순한 레이어링 된 효과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무심코 넘기려다 온종일 반복해서 듣게 된 묘한 앨범이다.

 

2021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