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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Corrado Saija - Hypotyposis (Lemongrassmusic, 2023)

 

이탈리아 작곡가 겸 사운드 아티스트 Corrado Saija의 앨범.

 

코라도는 독학으로 피아노와 컴퓨터 음악의 기초를 다졌고, 17세인 1999년부터 음악계에서 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규 음악 교육을 이수한 이후부터 공연, 전시, 설치, 영화, 다큐멘터리 등 시청각 분야를 위한 음악 작업에 기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0년대 초부터 자신의 음악을 선보이기 시작했는데, 피아노를 포함한 다양한 연주 악기의 기악적 요소는 물론 전자 음향의 독특한 표현을 접목한 다면적인 복합성을 특징으로 한다. 앰비언트나 드론 등 일렉트로닉의 경향적 특징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아방가르드나 프리 재즈와 같은 요소를 활용해 실험적인 표현을 완성하는가 하면, 일렉트로-어쿠스틱이나 모던 클래시컬의 익숙한 경험적 표현을 재현하기도 하는 등, 나름의 폭넓은 음악적 세계관을 선보이고 있다.

 

코라도의 음악이 다면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지만, 외형으로 드러나는 화려함보다는 내면으로 침전하는 듯한 고유의 정서적 밀도를 전하고 있으며, 이는 음악을 구성하는 사운드의 정교한 큐레이팅과 이를 배열하는 세밀한 레이어링을 통해 완성한다. 이번 앨범 역시 이와 같은 코라도의 음악적 특징에 기반하고 있다. 다만 지금까지 코라도는 개별 음반 작업을 통해 해당 앨범만의 고유한 특징을 강조했던 것과는 달리, 표현의 다양성을 담아내려고 했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앨범의 타이틀이기도 한, ‘Hypotyposis’라는 개념을 차용해 묘사적 특징에 대한 세밀함을 강조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개별 곡에 따라 독립적인 주장이나 언어적 설명을 활용해 대상의 강렬함과 명료함을 부각하고 있다.

 

독특한 점은 이와 같은 모든 작업의 출발점에는 익숙함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익숙함은 음악적 경험에서 기원하는 친숙함은 물론, 음악을 이루는 소리 그 자체의 근원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친숙함을 상징하는 요소에는 피아노와 색소폰 등의 전통적인 기악적인 사운드는 물론, 바흐와 헨델의 고전도 포함한다. 이러한 친숙함은 음악적인 가형과 변형을 통해 새로운 묘사적 특징을 포착하게 되고, 때로는 이전과는 다른 의미를 표출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도 기존의 친숙함과 새로운 표현 사이의 적절한 균형점 혹은 인과적 연관성을 설득력 있게 담아낸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색소폰의 다양한 기악적 표현을 다층의 레이어로 분할하여 전자 음악의 시퀀싱과 같은 공간 속에 배열하고 있지만, 전통적인 임프로바이징의 양식에 수렴하며 고유의 의미를 확장하는가 하면, “Lascia Ch'io Pianga”는 현대적인 음향 공간 속에서 새로운 고전미를 발산하면서도 미묘한 분열을 드러내기도 한다. 특히 근원적인 소리의 요소를 음악적 구성 안에 체계화하려는 일련의 접근은 실험적이면서도, 음악 그 자체에 대한 사고를 확장하기 위한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신서사이저의 기본적인 파형이나, 전기 혹은 전자의 다양한 노이즈와 펄스 등을 원형에 가까운 가장 라우한 형태 그대로 활용하고, 변조나 효과와 같은 방식이 아닌 진행 과정에서의 사운드 외적 구성을 통해 음악적인 효과를 연출하기도 한다.

 

사운드 고유의 캐릭터는 물론 그 의미와 상징성을 전위시키는 다양한 접근을 활용하고 있으면서도, 간결한 구성을 활용해 개별라인이 지닌 고유의 의미와 상징성을 부각하는 등의 복합적인 측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음악을 구성하는 요소로서의 정제된 소리와 더불어, 소리 그 자체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 혹은 탐구를 제시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진행 과정에서의 다양한 변수들을 통해 이와 같은 단순한 소리가 음악으로 실현되는 다양한 조건을 고찰하는 듯하다.

 

 

2023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