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트럼펫 연주자 Dave Douglas의 앨범. 데이브는 1990년대 초에 밴드 리더이자 연주자로 데뷔한 이후, 3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끊임없는 자기 혁신을 도모했던 뮤지션이 아닐까 싶다. 재즈라는 고유한 지반에서 단 한순간도 벗어나지 않았으면서도, 주변 장르와의 관계 속에서 그 표현을 갱신하는 한편, 전통적인 앙상블의 규범과 준칙에 대한 유연한 사고를 통해 새로운 확장의 가능성을 꾸준히 제안한다. 초기의 치열함은 여유로워졌고, 음악에 대한 집약적인 관심은 주변 예술과 문화에 대한 데이브의 개방적인 호기심으로 이어진다. 이번 앨범은 이와 같은 데이브의 현재성을 잘 확인할 수 있는 흥미로운 작업을 담고 있다. Secular Specs라는 다소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이번 앨범 타이틀을 맥락을 통해 유추해본다면, 중세 시대 수도원에 속하지 않고 속세에서 생활하는 사제의 신분 정도로 해석할 수 있으며, 정확히는 이번 앨범의 모티브가 된 화가 Jan van Eyck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앨범은 벨기에 겐트의 성 바보 대성당에 전시된 판 에이크의 제단화 The Adoration of the Mystic Lamb의 6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유대인 집안 출신이며 무신론자로 생활하는 데이브가 이와 같은 작업에 참여한 것만으로도 흥미롭다. 작업은 튜바/보이스 Berlinde Deman, 피아노/오르간 Marta Warelis, 기타/일렉트로닉 Frederik Leroux, 첼로 Tomeka Reid, 드럼/일렉트로닉 Lander Gyselinck 등 벨기에, 미국, 폴란드 등의 여러 뮤지션들이 참여한 6인조로 진행되었다. 앨범에는 화가가 활동했던 중세와 르네상스의 전환기에 유행한 다성부의 폴리포닉 한 표현을 활용하는가 하면, 시편의 일부를 인용해 그 의미를 재해석하기도 하고, 그 시절의 성가를 연상하게 하는 테마를 차용해 전체 주제에 대한 음악적 인식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데이브의 음악적 호기심은 모티브가 된 판 에이크의 제단화에서 시작되었지만, 곡과 연주는 단순한 중세적 근엄이나 종교적 엄숙을 그대로 다루기보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제단화에서 시작된 풍부한 사고와 상상력을 음악적 표현으로 생생하게 담으려는 듯, 평소 데이브의 음악적 관심에서 비롯된 복합적이고 유연한 모든 표현을 다루며, 6인조의 집단적 창의를 극대화하는 작업을 선보이며, 오히려 그 현재성에 주목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재즈, 클래식, 클라즈머 등 평소 데이브가 다루던 음악적 양식들은 여전히 유효하며, 개별화된 즉흥의 연속성을 하나의 단일 공간에 구조화하고 진행 속에서 그 내부의 연관을 다양한 방식으로 구체화하여 솔로의 모티브를 개방하는 방식 또한 더욱 세련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특히 집단화된 임프로바이징의 경우 고립 공간에서 끊임없이 인터랙티브 한 연관을 모색하는 과정으로 이어지고 있어, 앨범 작업 기간에 시행된 봉쇄와 고립을 음악적으로 반영했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음악을 몇 번이고 끝까지 주행한 지금 앨범의 타이틀 Secular Specs가 바로 데이브 자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2022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