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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Dryft - From Stasis (n5MD, 2021)

미국 전자음악가 겸 n5MD 레이블의 소유주인 Mike Cadoo의 Dryft 프로젝트 앨범. 이 앨범은 여러 가지 면에서 강한 상징적 의미를 지닌 것처럼 보인다. 10년은커녕 5년 이상 생존하기 힘든 마이너 한 특성을 지닌 음악 분야에 거대 자본의 도움 없이 거의 자력으로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며 이제는 나름 해당 장르의 주요한 플랫폼으로 성장한 것은 분명 경이로운 레이블의 성과이다. 이제는 거의 매달 새로운 릴리즈를 예고할 만큼 많은 뮤지션들이 레이블을 통해 자신들의 작업 성과를 공유하기를 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나름의 확고한 팬덤을 구축하고 있어 마이크가 인터뷰를 통해서 밝힌 기준에 의하더라도 n5MD의 성공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드라이프트는 마이크가 Mike Wells와 함께 실험적인 일렉트로닉 음악을 선보였던 Gridlock의 활동 기간 중, 드럼n베이스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기 위해 제작한 Cell (2020)을 원년으로 한다. 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공격적이고 강한 분출을 위한 표현으로 사용되었던 DnB를 IDM 스타일의 자기 성찰적인 우울함과 혼합해 독특한 정서적 글리치를 형성한다. 이후 설립된 레이블의 초기 카탈로그에 이와 같은 스타일의 곡들이 종종 등장한다는 점은 다분히 우연일 수도 있고 어느 정도는 마이크의 취향이 반영된 큐레이션의 결과일 수도 있다. 이후 마이크와 레이블은 앰비언트와 포스트-록 등을 포괄하는 폭넓은 음악적 실험을 선보이며 드라이프트 프로젝트는 잊히는 듯했으나, 10년 만에 레이블의 카탈로그로 Ventricle (2010)를 선보이고 이후 The Blur Vent (2014)를 발표한다. 이번 앨범은 7년 만에 선보이는 드라이프트의 네 번째 작업으로 2019년에 이미 제작이 완료되었고 레이블 릴리즈에 공백이 생길 때 발표하기로 하여 이번에 선보이게 되었다. 20년의 세월 동안 마이크가 펼쳤던 Bitcrush나 M.Cadoo 등의 프로젝트와 별개로 드라이프트의 음악만을 살펴보면 지금까지는 마치 그 표현을 조금씩 다면화하며 복합적인 수용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듯한 모습을 보여왔다. 반면 이번 앨범은 그 모든 것들을 단순화하고 가장 본질적인 핵심만을 활용해서 완성된 느낌이 강하다. 러스티 한 느낌의 드럼 비트와 루트 음을 중심으로 강한 압박을 구사하는 베이스, 고전적인 신서사이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사운드 등 그 구성은 무척 심플하며 장르적 표현 또한 무척 명료하다. 진행 또한 매우 간결하여 개별 사운드 자체에 강한 밀도감을 부여하고, 특별한 멜로디의 개입 없는 단순한 코드 진행을 통해 자연스러운 플로우를 완성하는데,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내러티브를 보여주고 있어 무척 인상적이다. 마치 20년을 되돌아보고 그 핵심에서 새로운 음악적 영속을 위한 가능성을 다시금 확인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드라이프트 프로젝트뿐만 아니라 마이크 본인에게도 뜻깊은 작업임을 느낄 수 있다. 그 모든 진심이 느껴지기에 감동적인 앨범이다.

 

2021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