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rthen Sea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인 미국 전자음악가 Jacob Long의 앨범. 제이컵은 하트코어 한 성향의 Black Eyes에서 오랜 기간 베이스를 연주하는가 하면, Mi Ami에서는 일렉트로닉을 이용한 더빙을 담당하기도 했고, 자신의 개인 작업 역시 비트와 리듬에 의해 추동되는 테크노를 포함하는 등, 지금까지는 비교적 폭넓은 표현의 영역을 탐구하는 실험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후 Kranky 레이블을 통해 선보인 An Act Of Love (2017)와 Grass And Trees (2019)에서는 기존 사운드에서 감각적인 요소를 이루고 있던 비트와 리듬의 역할을 상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ES 사운드의 변화를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이후 국내 음반사 Huinali를 통해 발표한 Quiet Pools (2022)에서는 여전히 뎁과 테크노의 구성을 활용한 음악을 들려주고 있어, 일정 부분은 발매사의 성격에 따른 합목적성을 반영한 결과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이번 작업이 Kranky를 통해 발매된 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기존 자신의 음악을 비트리스에 가까운 양식으로 해소하고 로우-파이 앰비언트의 고유한 특징을 부각한 녹음을 들려준다. 특히 이번 작업의 경우 감염병 사태로 인한 뉴욕 봉쇄 기간 초기에 시작된 것으로, 당시의 상황을 반영한 듯한 우울감과 무력감을 담아낸 듯한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이전 작업에 비해 사운드의 구성 역시 단조로운 특징을 띄고 있는데, 7th 코드로 패칭 된 로드 키보드와 일상에서 채집한 필드 리코딩을 스튜디오 더빙을 통해 레이어링하고 있다.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사운드는 느린 BPM의 플로우 속에서 무기력하게 직조된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반복되는 일련의 루프와 공간에 무심하게 개입하는 효과들을 통해 정서적 흐름을 음악적으로 반영한 흔적을 쉽게 엿볼 수 있다. 특히 단조로운 비트는 마치 일상의 무의미한 동작이나 빛의 파장에 주목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듯한 모습처럼 비치기도 하지만, 미니멀한 코드와 섬세한 리듬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기능을 자연스럽게 수행하며 각각의 구조를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있어, 제이컵의 본능에 가까운 음악적 감각을 보여주기도 한다. 또한 각각의 곡에 달린 고유한 제목은 그 자체로 연주의 분위기를 집약하는 역할뿐만 아니라, 개별 사운드와 요소가 지닌 상징적 의미를 요약하는 등 강한 표제적 성격을 드러내고 있어, 제이컵의 자연스러운 음악적 감수성을 엿볼 수도 있다. 기존 자신의 음악적 아키텍처를 크게 흔들지 않으면서도, 이처럼 전혀 다른 분위기와 감성을 연출한다는 점에서 흥미롭고, 인간적 무력감을 온도감이 느껴지는 사운드로 완성하고 있어 매혹적인 앨범이다.
2022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