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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Eivind Aarset - Phantasmagoria, or a Different Kind of Journey (Jazzland, 2021)

노르웨이 재즈 기타리스트 Eivind Aarset의 앨범. 에이빈을 단순히 록 스타일의 재즈 기타리스트라고 단정하기에는 그의 연주 속에 담긴 수많은 섬세함은 물론 다양한 양식들로 드러나는 풍부한 표현들을 간과하는 것이다. 그의 음악과 깊이 연관된 일렉트로닉이나 평소 함께 협업했던 뮤지션들과의 관계 때문에 누-재즈 계열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사이드맨이나 자신의 프로젝트를 통해 선보였던 음악들을 생각한다면 이 또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어쩌면 이와 같은 사정들은 에이빈의 독보적인 위상을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쿼텟으로 녹음된 이번 앨범에는 드럼/퍼커션/프로그래밍 Wetle Holte, 드럼/퍼커션/비브라폰 Erland Dahlen, 베이스 Audun Erlien 등이 참여한 독특한 구성을 보여주며, 여기에 게스트로 트럼펫 Arve Henriksen, 샘플링 Jan Bang, 필드 리코딩 John Derek Bishop 등 에이빈의 오랜 동료 뮤지션들이 함께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인적 구성은 공식적인 리코딩은 남기지 않았던 2010년대 초중반의 투어 밴드 Dream Logic Quartet을 떠올리게 하는데, 베이스를 제외하면 당시와 동일한 멤버 구성을 보여주고 있어 이번 앨범은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실제로 당시의 상황을 담은 동영상이나 비공식 부틀랙을 들어보면 이번 녹음이 DLQ의 음악적 아이디어를 계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얀과의 듀엣 Dream Logic (2012)을 모티브로 이를 확장된 공간 속에서 새로운 사운드의 접근을 통해 자신만의 음악적 세계관을 펼치려고 했던 시도였던 만큼,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지체된 이후에야 온전한 형식의 녹음이 완성된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두 대의 리얼 드럼을 양 기둥으로 하는 사운드의 구성은 아무리 정교한 비트 시퀀싱으로 완성된 트랜스 한 패턴과도 비교할 수 없는 날 것 그대로의 생생한 공간적 현실성을 보장한다. 이는 다양한 프로그래밍과 일렉트로닉의 개입에도 자신들의 유니크한 음악적 지반을 굳건히 하는 토대로 작용함과 동시에 에이빈의 기타가 제약 없는 표현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역할을 한다. 여기에 베이스는 전체적인 음악의 무게 중심을 무겁게 누르는데, 이는 확실히 에이빈의 음악적 상징처럼 언급되는 Électronique Noire의 분위기와도 절묘한 융합을 보여준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게스트들이 참여한 트랙들로 각각의 뮤지션들의 성격에 맞게 공간을 재배열하는 쿼텟의 유연함은 마치 새로운 음악적 플랫폼으로의 진화 가능성을 시사하는 듯하여 상당히 인상적이다. 굳건하면서도 유연한 연주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에이빈의 창의적인 걸작이다.

 

2021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