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ound

Enrico Coniglio - Alpine Variations (Dronarivm, 2021)

이탈리아 작곡가 Enrico Coniglio의 앨범. 엔리코는 기타리스트로도 유명하며 필드 리코딩과 사운드 아티스트로도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때문에 그의 작업은 각각의 고유한 개별적 특징이 강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자연과 환경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은 공통으로 드러나는 특징이기도 하다. 이번 앨범의 표지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알프스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 엔리코의 작업과 연관성이 드러난다. 이번 앨범은 고산의 품위와 차가운 자태를 염두에 두기라도 하듯 바람을 연상하게 하는 섬세한 패드와 드론을 비롯해 필드 리코딩과 주변적인 효과, 그리고 피아노와 기타 등과 같은 연주 악기를 이용한 음악적 조합을 선보이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번 작업에서 다분히 서사적 내러티브를 떠올리게 하는 진행을 펼친다는 것인데, 이 또한 전체적인 테마와 관련된 이번 앨범만의 고유한 특징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을 듯하다. "First Ascent"로 시작해 "Returnings"로 마무리되는 앨범은 마치 등반의 여정을 따라가는 듯한 서사의 흐름을 보여주면서도, 개별 트랙에서 상징적인 소리의 윤곽들을 부각함으로써 묘사적인 치밀함을 함께 제공해주기도 한다. 마치 의도적으로 정서적 반영을 배제한 흐름과 묘사임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트랙은 등반의 각 과정에서 경험하게 되는 힘겨움과 험난함을 비교적 건조하게 드러냄으로써 마치 그 흐름이 일련의 영적 수행과도 같은 느낌을 준다는 점에서 묘한 매력을 경험하게 된다. 차갑고 날 선 느낌의 엷은 드론과 패드는 고산을 뒤덮는 바람을 닮았는데, 사운드 그 자체의 부피와 볼륨을 통해 풍속을 가늠할 수 있고 그 주변에 배치된 노이즈, 효과, 필드 리코딩은 마치 내 피부와 육체에 도달하는 자연의 가극 같은 생생함을 경험하게 한다. 여기에 이펙터의 굴절을 통해 전달되는 연주 악기의 사운드는 눈보라를 뚫고 희미하게 전해지는 세상의 빛과 풍경을 연상하게 하는 등, 앨범 전체적으로 보여주는 묘사와 표현은 탁월하다. 가장 큰 미덕은 이 모든 과정을 스펙터클하게 과장하지 않고 담담하고 차분하게 조율함으로써 마치 등반을 수행의 과정처럼 담아냈다는 점이다. 앨범이 정서적 반영이 없음에도 깊은 공감을 끌어낼 수 있었던 것이 어쩌면 이와 같은 진솔한 표현 덕분이지 않을까 싶다.

 

2021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