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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Esmerine - Everything Was Forever Until It Was No More (Constellation, 2022)

캐나다 체임버 뮤직 그룹 Esmerine의 앨범. 에스메린은 2000년대 초 첼리스트 Rebecca Foon과 퍼커션 연주자 Bruce Cawdron의 듀오 프로젝트로 시작해 이후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는 뮤지션들을 포함하는 4인조 그룹으로 발전하게 된다. 지금까지 소소한 멤버 구성의 변화를 거치면서 이번 앨범에는 현악 및 관악기를 비롯해 여러 악기를 연주하는 Brian Sanderson, 베이스와 건반 및 전자 악기를 담당하는 Philippe Charbonneau가 그룹에 합류했고, 녹음에는 이들 외에도 기타리스트 James Hakan Dedeoğlu와 Jace Lasek를 비롯해 바이올린 Aliayta Foon-Dancoes와 Sophie Trudeau, 플루트 Olga Goreas 등이 참여하고 있다. 에스메린의 음악은 모던 클래시컬, 포스트-록, 재즈, 민속 등의 다양한 장르적 접합을 실내악의 형식적 규범 속에서 재현하고 있어 무척 독특한 형상을 지니기도 한다. 듀오 시절에는 타악기와 첼로를 중심으로 하는 미니멀한 양식의 음악을 선보였던 것으로 전해지지만, 실제 이들의 만남은 밴드 Set Fire To Flames의 녹음이 계기가 되었고, 직접적으로는 Godspeed You! Black Emperor와 Thee Silver Mt. Zion 혹은 Saltland 등과 같은 포스트-록 그룹의 활동과 긴밀한 연관을 갖기도 하다. 본격적으로 4인조 편성을 통해 완성한 에스메린의 음악은 기타의 사운드가 공간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면서, 포스트-펑크 혹은 포스트-록과 일정한 거리에서 연관성을 끊임없이 확인시켜 왔고, 여기에 여러 테마나 기악적 특징들을 반영해 장르적인 복합성을 지닌 형상을 완성하게 된다. 때문에 체임버 록이라고 통칭해 이들의 음악을 분류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더 복합적인 특성들을 내포하고 있어, 이 또한 조금은 제한적인 규정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시기에 따라, 특히 멤버의 변화에 따라 에스메린의 음악은 미묘하게 다른 특징을 부각하기도 하는데, 한 사람의 뮤지션이 여러 악기의 조합을 완성하는 그룹의 특성 탓에 어쩌면 필연적인 부분이며, 이번 작업 역시 전과는 다른 신선함을 발견하게 된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분위기다. 암울함, 절망, 분노, 슬픔 등의 복합적인 감정이 절제된 형식으로 표현된 독특한 분위기는 특히, 소비에트의 마지막 세대로 분류되는 Alexei Yurchak의 소설 제목을 그대로 차용한 앨범 타이틀에서부터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특히 이전 작업에 비해 조금은 더 웅장해지고 복잡해진 사운드의 레이어링과, 진행 및 구성에 따라 세분화된 라인에서 게스트의 기타가 차지하는 역할과 비중을 부각하며 보다 선명한 음악적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듯한 느낌은, 마치 이번 이번 작업이 감염병 사태와 관련한 우리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형식적 크레센도가 아닌 음악의 밀도를 더해가며 마치 감정을 응축하는 듯한 진행은 물론, 각각의 악절을 이루는 사운드 및 장르적 요소에 대한 섬세한 큐레이팅으로 고유의 음악적 내러티브를 완성하는 동시에 정서의 복합성을 보여주려는 듯한 구성 등은, 이번 앨범이 보여주는 독특한 매력 중 하나다. 과장되지 않는 절제된 표현으로 완성할 수 있는 미적 표현의 훌륭한 예를 보여주는 앨범이다.

 

2022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