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활동 중인 피아니스트 Eunbi Kim의 앨범.
이민 가정에서 태어난 김은비는 클래식을 바탕으로 오늘날의 음악 및 문화의 다양한 장르의 교집합을 탐색하는 독특한 매력을 지닌 뮤지션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저서에 나오는 피아니스트의 캐릭터에서 영감을 받아 결성한 Murakami Music은 책에 나오는 다양한 클래식과 대중음악에 여러 퍼포먼스를 결합한 창작 활동으로 이어지며 호평을 얻은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그녀의 re: last night 프로젝트는 현대의 다양한 장르의 작곡가들과의 협력을 통해 새로운 음악 창작을 선보이는 김은비의 독특한 작업으로, 데뷔작인 A House Of Many Rooms (2017)를 포함한 이번 앨범 또한 이와 같은 기획의 연장에서 바라볼 수 있을 듯하다.
김은비는 데뷔작에서 클래식의 언어를 바탕으로 Fred Hersch의 미발표 작품들을 재현하며 미묘하면서도 매력적인 연주자의 다면성을 드러내기도 하는데, 재즈의 표현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으면서도 장르적 기원을 충분히 다루는 복합적 특징은 무척 인상적이다. 이번 앨범 역시 앞에서 언급한 re: last night 프로젝트를 통해 교류를 맺은 여러 작곡가들의 작품을 선보이게 되는데, Daniel Bernard Roumain, Sophia Jani, Pauchi Sasaki, Angélica Negrón 등의 오리지널을 초연하고 있으며, 드러머 Wenting Wu와의 협연도 포함하고 있어, 음악적 장르 외에 문화적 다양성까지 포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번 앨범에서 가장 상징적인 트랙들은 DBR의 오리지널을 다룬 트랙들이 아닐까 싶은데, 다니엘이 상징하는 음악계에서의 현실적인 존재감은 물론, 재즈를 바탕으로 장르적 다양성을 반영하는 그의 작업은 김은비의 음악적 지향과 여러 면에서 공통점을 지닌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특히 앨범의 타이틀이면서 김은비의 최근 활동을 집약하는 It Feels Like와 직접 관련된 “It Feels Like A Mountain, Chasing Me”은 마치 피아니스트가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작곡가에게 들려주면서 이를 음악으로 완성한 듯한 느낌을 들게 하는 독특한 매력을 지닌다. 김은비는 자신의 부모님과 관련한 이야기를 독백처럼 전하는가 하면, 그분들의 삶을 통해 현재의 자신을 연관 지으며 기억과 언어 그리고 정체성에 관한 진솔함을 담담하게 전달한다. 수화기 건너편에서 전해지는, 딸을 향한 어머니의 근심 어린 목소리에 “집에 가면 삼계탕 해줄 거야?”라며 화제를 돌리는 둘만의 대화에 이어, chicken soup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는 김은비의 독백은, 무척 사적이면서도 누구나 한 번은 경험했을 법한 보편성을 지니고 있어 가슴이 먹먹했고, 여기에 더해지는 피아노 연주는 그 정서와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하고 있는 듯하여 16분이 넘는 긴 시간을 귀 기울이며 경청하게 된다.
소피아 자니의 곡을 연주하며 서스테인과 리버브를 활용해 피아노의 독특한 공간감을 연출하고, 그 사운드의 테일에 미세한 일렉트로닉을 더해 원작자의 음악적 분위기를 섬세하게 반영하는 모습은 인상적이며, ‘엄마 손은 약손’이라는 동양적 정서를 일본계 페루 작곡가 파우치 사시키와 한국계 미국 연주자가 함께 완성하는 과정은 이색적이면서도 무척 신선하다. 샘플링한 목소리에 맞춰 피아노 음을 이어가며 음악적 표현으로 엮은 실험적인 안젤리카 네그론 곡의 연주는 난해 하다기보다는 오히려 재기 발랄하다고 느끼게 할 만큼 감각적이고 참신하며, BDR의 원곡을 중국계 드러머 윈팅 우의 단출한 드럼 세트와의 협연으로 완성한 3부작은 집약적이고 관조적인 상호 개입에도 불구하고 다면적인 복합적 표출을 이루고 있어 흥미롭다.
김은비의 연주는 과하지 않은 진솔함을 지니고 있으며, 벨로시티나 템포 하나만으로도 정서적 혹은 음악적 미묘함조차 고스란히 전달되는데, 덕분에 그녀가 다루는 다면적인 특징이 굴절되지 않고 직관적으로 연주에 반영되어 더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직접 작곡을 다루지 않는 대신 작곡가와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음악을 창작하는 인상적인 작업을 담고 있는 앨범이다.
2022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