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뮤지션 Max Kubbe와 Alexander Lvov의 듀오 프로젝트 FOARM의 앨범. 막스와 알렉산더는 KIROV라는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에서 기타와 드럼을 연주하던 동료로, 밴드와는 별개로 앰비언트 계열의 일렉트로닉을 지향하는 듀오 FOARM을 결성한다. 작년에 선보인 Midlife Regrets Sessions (2020)에서 듀오는 새로운 장르에서의 음악적 가능성은 물론 자신만의 독창성까지 함께 증명하게 되는데, 이번 앨범은 그 두 번째 작업이다. 이들의 음악은 서사를 중심으로 구성되는 듯한 긴 플로우를 지니지만 공간의 볼륨을 키워 채우는 방식 대신 그 안을 섬세한 사운드의 배치를 통해 정서적 밀도를 축적하는 접근을 취하고 있다. 진행에서는 특정한 형식적 양식을 취하지 않는 대신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긴 호흡 속에서 변화와 전개를 이어가는, 어찌 보면 치밀하게 조직된 의식의 흐름에 따르는 듯한 묘한 방식을 보여주기도 한다. 때문에 대부분의 곡들은 7-13분에 이르는 장편들이며 그 안에는 진행을 이끄는 다양한 사운드는 물론 변화의 모티브를 구성하는 멜로디나 라인이 등장하며 복합적인 방식으로 진전된다. 하나의 단일한 사운드 텍스쳐를 사용하지 않는 대신, 진행에 따라 자연스러운 질감의 변화와 그 유도를 경험하게 된다. 따라서 빌드-업에 따른 극적 변화나 반전은 제한되는 반면, 점진적으로 이끌리는 정서의 흐름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마치 안개와 같이 공간을 세밀하게 채우는 패드 음향으로 드론 스웰을 구성하고 미니멀한 라인의 중첩으로 밀도 있는 사운드 스케이프를 연출하지만, 전체적으로 어둡지 않은 톤으로 연출되고 있어 그 분위기는 다분히 무거우면서도 몽환적이기까지 하다. 마치 비현실적인 공간 속에서 의식이 부유하며 어디론가 이끌려 가는 듯한 느낌은 이들의 음악에서 경험할 수 있는 매력 중 하나일 것이다. 낮은 콘트라스트와 넓은 다이내믹 레인지에 암부의 디테일을 살려 묵직하게 표현된 커버 아트의 흑백 사진과 절묘하게 닮은 음악이다.
2021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