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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ding Language - Vessels of Time (Insight Music, 2018)


미국에서 활동 중인 뮤지션 겸 프로듀서 Anthony LoPrete의 프로젝트 페이딩 랭귀지의 신보. 이번 앨범은 풀타임으로 제작된 그의 첫 번째 앨범이다. 2014년부터 활동을 시작했다고 전해지기는 하지만 그와 관련하여 유의미한 텍스트로 활용할 수 있는 자료는 2016년부터 스트리밍 서비스에 공개한 10곡 남짓한 싱글들뿐이다. 기존의 싱글들을 포함해 이번 앨범까지, 그의 음악은 단순하게 정의하기 어려운 복합성을 지니고 있다. 취향이나 관점에 따라 일렉트로닉에 기반을 둔 모던 클래시컬 계열로 정의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앰비언트적 요소가 강조된 퓨처 개러지로 들을 수 있다. 또한 필드 리코딩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고 일부 곡에서는 다운템포의 요소까지 더해지면서 상황은 더 미묘해진다. 전자 악기와 그 효과에 기반하고 있지만 기악적 특징을 배제하지 않으며, 미국에서 활동 중이지만 다분히 유럽적인 특성들이 강조되기도 한다. 이렇게 글로 쓰고 나면 앤서니의 음악이 정체불명의 뭔가 괴이한 이벤트처럼 묘사되지만 정작 들어보면 무슨 말인지 쉽게 알게 될 것이다. 편하게 감상하기에 전혀 무리도 없으며 그 어떠한 설명 없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음악으로 전해진다. 결국 앤서니의 음악은 자신을 향한 언어적 설명들을, 페이딩 랭귀지라는 프로젝트 이름처럼 소멸시키고 있으며, 본인 스스로 음악 외에는 그 어떠한 말로도 자신의 작업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미 모든 이야기는 음악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앨범 전체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시간의 여정을 담고 있어 긴 호흡으로 이어지는 내러티브를 보여주고 있으며, 세부적인 묘사를 통해 상황의 디테일을 연출하고 있어 구성과 사운드 등 모든 면에서 너무나도 시네마틱하다. 비 내리는 폐허 가득한 도시를 배회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만드는 음악적 은유와 상징들 또한 인상적이다. 이번 앨범은 이전에 발표했던 단편적인 싱글들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었던 포괄적인 구조의 치밀함과 스토리의 완성도를 경험할 수 있어 신선하다. 언어가 소멸한 자리에서 시작한 음악이 더 큰 상상력을 자극한다.

2018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