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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Fionnlagh - Beyond The Void (Archives, 2023)

 

Fionnlagh라는 이름으로 네덜란드에서 활동 중인 영국 전자음악가 Mark Findlay의 앨범.

 

마크는 지금까지 트랜스, 하우스, 테크노와 같은 감각적인 작업 영역에서 주로 활동을 해오던 중, 자신의 내면을 파고드는 어둠과 불안을 표출하기 위해 피언라그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음악을 발표하게 된다. 2020년대 이후부터 Ambientologist 레이블에서 일련의 싱글 발표로 시작한 피언라그의 작업은, 공교롭게도 감염병 대유행과 맞물려 있으며, 실제로 상당수의 곡 제목은 현실을 암시하는 듯한 절망과 희망을 담고 있다.

 

피언라그의 개별 작업을 총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첫 데뷔 앨범은 What Came Before (2021)라는 타이틀로 발매했으며, 우울한 정서적 톤의 신서사이저로 연출한 사운드의 중첩은, 마치 어둠과 불안이 가득한 디스토피아적인 세계를 담아낸 듯 보였다. 앨범은 암흑의 시대를 다루고 있지만, 영화적인 몰입을 보여주는가 하면, 쉽게 낙관에 도달하지 않을 것만 같은 절망적 표현을 지속하며, 선뜻 그 공포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마저도 무력하게 만들어 버리는 강한 침식을 경험하게 한다. 때문에 앨범에는 “심약자에게는 권하지 않다”는 경고문까지 적어야 했을 만큼, 피언라그의 첫 앨범은 강한 음악적 힘을 담고 있다. 명망 있는 동료 음악가들의 참여로 완성한 리믹스 앨범 What Came After (2022)에서는 새로운 해석과 재구성을 통해 피언라그의 음악이 지닌 확장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듯 피언라그의 음악은 다크 앰비언트의 경향적 특징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으며,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을 담으면서도, 현실에 대한 인식을 놓지 않는 설득력을 보여주고 있다. 해당 장르의 특징을 이루는 시네마틱한 내러티브를 포함하지만, 이를 구성하기 위한 구체적 연출에서는 직접 채집한 소스 자료나 필드리코딩, 다양한 방식의 음향 합성과 신서사이저 등을 활용한, 다분히 오소독스한 작법을 이용해 완성한 드론과 앰비언트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사운드 그 자체에 안착해 있는 고유한 질감은, 그의 음악이 묘사적 표현이나 정서적 반영을 다루더라도 늘 한결같은 일관된 몰입을 가능하게 하는 요인이며, 그 흐름 속에 감각적인 표현이 더해지더라도, 감정의 깊이를 무겁게 누르도록 작용하는 힘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피언라그의 음악적 매력은 이번 작업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다만 전작에서는 헤어나기 힘든 불안이 극에 도달한 밤의 가장 어두운 순간을 다뤘다면, 이번 앨범은 그 제목과 커버를 통해 유추할 수 있듯이, 지금까지의 ‘공허를 넘어’ 아련하게나마 기댈 수 있는 희미한 빛을 담아내기 위한 과정을 보여주는 듯하다. 충분히 예상했겠지만, 그렇다고 앨범은 쉬운 낙관이나 근거 없는 희망을 다루는 섣부름을 보여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 어둠과 불안의 깊이는 여전히 이전 작업의 연장 속에 있으며, 어쩌면 이미 익숙해진 현실이 되어 버린 불안에 대한 순응처럼 느껴지는 대목도 전재한다. 노이즈 필드의 연출이 묘사하는 장작 타는 듯한 소리는 어둠 속에서 생존하기 위한 자생적인 몸부림처럼 전해지며, 그 위로 거친 공기처럼 물결치며 흐르는 폴리포닉한 드론의 엔벨로프는 쉽게 물러설 것 같지 않은 차가운 어둠을 묘사하는 듯하다. 파도를 담은 듯한 노이즈와 텍스쳐의 중첩은 안도의 순간이 가까이 있음을 암시하는 듯하지만, 여러 라인이 레이어링 되어 이루는 독특한 코드 보이싱이나 불길하게 개입하는 간헐적인 라인과 퍼커시브한 소스들은, 그곳에 이르는 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음을 확신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번 앨범은 묘사적 표현과 정서적 반영은 물론, 곡의 구성과 흐름을 통해 고유한 내러티브까지 담아내며, 듣는 이에게 풍부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놀라움을 보여준다. 전달 방식은 정교하면서도 복잡하지만, 매우 직관적인 형식으로 우리에게 도달하여, 이 또한 무척 인상적이다. 앨범은 오랜 고립이 우리에게 남긴 공허를 다루면서도, 그 상처가 이제는 흉터로 남아 있기에, 이를 넘어선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님을 보여주는 듯 하지만, 누군가 이렇게나마 음악을 통해 공감을 전하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것은 사실이다. 여전히 어둠과 불안을 다루고 있지만, 그래도/그래서 위안이 되는 앨범이다.

 

 

2023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