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oating Points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인 영국 전자음악가 Sam Shepherd, 말 그대로 살아 있는 미국 재즈의 전설 Pharoah Sanders, 그리고 LSO의 현악이 녹음한 앨범. 이 무슨 거짓말 같은 조합일까 싶지만, 이 계획은 파라오가 5-6년 전 우연히 샘의 음악을 듣게 되면서 시작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앨범의 성격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커버 아트가 아닐까 싶다. 샘의 작곡에 기반한 일렉트로닉, LSO의 스트링 파트, 파라오의 솔로 라인이 마치 각기 독립적인 레이어를 구성하며 그 층위의 역할을 분명히 드러내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전체적으로 다분히 일렉트로닉의 형식적 구성 방식을 따르고 있지만, 그 효과로 드러나는 음악적 지향은 파라오의 공간을 개방하는 것에 있다. 이는 이번 앨범의 가장 큰 매력이자 미덕이라 할 수 있다. 앨범은 총 9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46분이 넘어가는 긴 호흡으로 자연스럽게 연관을 이루며 이어지고 있다. 이 중 상당수는 제한된 노트의 미니멀한 구절로 이루어진 반복적 진행 위에 파라오의 솔로에 의해 이미지가 완성되는데, 젊은 시절 실험적인 진행 속에서 선보인 오버블로잉이나 멀티포닉 등의 현란한 테크닉을 전면에 부각하지 않는 명료한 라인을 풀어가고 있다. 이와 같은 부드러운 조화 속에서도 연륜에서 드러나는 깊이 있는 호흡과 음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은 상당한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하다. 그 외의 악장에서는 샘 특유의 일렉트로닉이 제공하는 섬세한 묘사를 경험할 수 있다. 레트로 한 사운드에서부터 모던한 음향까지 다양한 질감의 키보드를 활용하고 있지만, 스스로 전면에 나설 수 있는 순간에도 색소폰의 톤을 넘어선 표현을 자제하는 절제된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앞에서 언급한 독립적 레이어의 고유한 역할에 대한 인식을 바탕에 둔 것일 수도 있으며, 결과적으로 앨범의 전체적인 균형을 고요한 긴장 속에서 유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의 하나임은 분명하다. 8악장 마지막 1분여 동안, 저역에서의 낮은 데시벨로 이어지는 침묵에 가까운 음악적 여백을 뚫고 서서히 LSO의 현악이 등장하며 전체의 완성을 이루는 9악장의 코다는 앨범 전체의 완성을 이루는 완벽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오랜 세월 음악 역사의 일부를 몸으로 체화한 거장에 대한 존경과 더불어 훌륭한 음악적 성과를 담아낸 인상적인 앨범이다.
2021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