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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Giovanni Di Domenico - Succo di formiche (Unseen Worlds, 2023)

 

벨기에에서 활동 중인 이탈리아 피아노/키보드 연주자 Giovanni Di Domenico의 앨범.

 

1977년 로마에서 태어난 지오반니는 토목기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10살이 되기 전까지는 리비아, 카메룬, 알제리 등 주로 아프리카 지역을 옮겨 다니며 생활했고, 이후 자국에서 정치적 격변과 문화적 저항을 온몸으로 체험하며 24세까지 독학으로 음악을 공부한 것으로 전해진다. 2001년 네덜란드 Koninklijke Conservatorium에 입학해 재즈 피아노를 전공하게 되는데,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경험은 새롭게 변화하는 유럽의 환경 속에서 보다 통합적인 문화적 사고를 개방했다고 한다.

 

실제로 지오반니의 음악은 복합 장르적인 특징을 지니며, 전통의 맥락에서 진행한 프리 재즈는 물론 현대적인 해체를 다루는 유럽 재즈의 진보적인 표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서양의 고전적인 특징을 포함해 여러 국가의 민속적 양식을 반영한 표현 등이 통합적인 형식으로 발현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당연하게도 기존의 전통적인 기악적 표현 외에도 전자 음향에 대해서도 유연한 태도를 지니는데, 단순한 사운드의 기능적 활용을 넘어서 전자 음악이 지닌 고유한 장르적 표현과 그 양식에 대해서도 개방적인 수용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지오반니의 음악과 연주는 협업을 진행하는 여러 뮤지션들과의 음악적 맥락 속에서 구체적 표현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자신의 작업 안에서는 의도와 기획에 따라 다양한 양식의 포괄적인 특징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개미 주스’라는 다소 난해하고 모호한 타이틀을 달고 있는 이번 녹음에는 레트로건반/토이피아노/신서사이저 Pak Yan Lau, 전자기타 Manuel Mota, 아코디언 Stan Maris, 드럼/일렉트로닉 Joe Talia 등이 함께하고 있고, 지오반니는 피아노를 비롯해 펜더로드와 오르간을 연주하고 있다. 이번 녹음은 “최소한의 시간 안에 한 악장 모음곡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음악의 근간을 이루는 “즉흥적 충동”을 다룬다고 전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콘셉트 속에서도 지오반니가 지향하는 음악적 통합성은 인상적으로 재현되고 있다.

 

작곡의 의도는 개별 공간의 자율적 표현의 개방을 염두에 두기라도 하듯, 비교적 간결한 테마와 구성을 지니고 있으며, 진행 또한 일련의 반복적 흐름을 기반으로 다양한 진화의 양식을 포착하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때로는 미니멀한 구성의 엄밀함이 진행을 구조화한다는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각 공간의 표출적인 표현이 이루는 다양한 관계를 관찰하다 보면, 오히려 생생한 긴장과 균형을 집단화하며, 하나의 단일한 집합적 표현을 완성하는 인상적인 과정을 경험하기도 한다. 곡의 성격에 따라 연주자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혹은 상대와의 호흡을 맞춰 자신들의 다양한 “즉흥적 충동”을 표출하는데, 이와 같은 흐름이 개방하는 자율성에도 불구하고, 집단화된 합에 있어서는 균일한 음악적 밀도에 수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절묘하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개별 뮤지션의 임프로바이징이 진행의 주요 흐름을 완성하지만, 전체 공간을 통합하는 형식에서는 재즈, 아방가르드, 클래식, 일렉트로닉, 앰비언트 등의 다양한 장르적 양식들이 연상될 만큼, 다면적인 특징을 포괄한다는 점 또한 인상적이다. 이 과정에서 각 장르의 고유한 언어와 표현이 유연하게 개입하는 것도 무척 흥미롭다.

 

예상 밖의 의외성을 포함하여 순간 귀를 세우기도 하고, 자율성이 서로 대면하며 긴장을 유도하기도 하지만, 이와 같은 모든 순간들이 자연스럽게 하나의 통합적인 흐름에 수렴하며 고유의 음악적 밀도를 완성하는 과정에서 강한 음악의 힘을 느끼게 된다. 현대 장르의 여러 요소들이 온전한 방식으로 자신의 표현을 표출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서로의 접점을 확인하며 통합적인 다면성을 완성하는 자연스러운 구성과 흐름을 담아낸 앨범이다.

 

 

2023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