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intable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인 미국 전자음악가 James Cooke의 앨범. 제임스는 지금까지 하우스에서부터 인스트루멘덜 힙합 및 테크노에 이르는 폭넓은 활동 영역을 포괄하는 인물로 알려졌지만, 10여 년 전 현재의 Ransom Note 레이블을 인수하면서 자신의 작곡과 창작에 보다 직관적인 접근을 보이고 실험적인 양식을 수용하면서 지금의 그레인테이블과 같은 프로젝트를 현실화하게 된다. 앰비언트와 드론 등 비교적 단순한 구성을 통해, 원 테이크 잼 형식으로 일련의 실험적인 작업을 완성하게 되는데, 그 첫 작품이 Herons (2018)였고, 이후 발매한 Universal Ash (2019)에서도 이와 같은 접근은 여전히 유효한 방식으로 활용된다. 세 번째 작업인 이번 앨범 또한 마찬가지다. 이와 같은 일련의 작업은 그 작법에의 고유한 일관성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그 내용에서도 자연 및 주변 현상에 대한 집요한 묘사를 담아내고 있는데, 이는 마치 그레인테이블의 고유한 음악적 특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작업 방식과 소재에서 다양성보다는 집중을 택한 전략은 제임스가 활용하는 사운드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아날로그 신서사이저 특유의 볼드 하면서도 온화한 톤의 사운드는 그레인테이블의 시그지처와도 같은 인상을 주며, 여기에 여백에 여운을 깊게 남기며 퍼지는 리버브 또한 그의 독특함을 상징하는 표현 방식이기도 하다. 진행은 특정한 형식적 완성을 염두에 둔 방식이라는 느낌보다는 마치 라이브와도 같은 즉흥적 변주를 이어가는 자연스러운 일련의 플로우를 보여준다. 싱글 라인의 단순한 반복적인 멜로디, 스텝 시퀀싱으로 조직된 사운드의 단편적인 흐름, 배경을 이루는 여러 유형의 음향과 효과 등, 비교적 명료한 형식의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각각의 요소들을 둘러싼 리버브, 톤, 프리퀀시 등의 미묘한 변화를 통해 진행을 완성하는 방식이다. 엔벌로프의 축소나 확장, 피치밴드의 움직임 등과 같은 변화 또한 고유의 균형점을 해치지 않는 일련의 지속성을 보여주는 형식이라, 그 전체 과정은 극적인 느낌보다는 미묘한 움직임과도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 이처럼 소박한 형식의 구성이라 사운드 그 자체가 지니는 상징적 의미가 주목받는데, 이는 각 곡이 지닌 표제적 성격과 맞물리며 제목이 암시하는 분위기를 묘사적으로 풀어가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사운드 그 자체와 더불어 여백이 강조되고 있는 만큼 여운에 밀도를 부여해 그 부재의 공간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명확히 하는 것도 인상적이다. 앞선 사운드의 잔향이 뒤이어 오는 소리와 중첩을 이루며 완성하는 묘한 공간감은 묘사적인 연주에 명상적 특징을 부여하여, 그레인테이블의 독특한 특징을 이룬다. 매립된 도시 공간에서 인위적으로 연출된 자연 공간을 보는 듯한 생경함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반대로 자연이 처하고 있는 낯선 고립감을 우회적인 방식으로, 마치 거울에 반영된 모습처럼 묘사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묘한 매력을 지닌 앨범이다.
2022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