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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Grand River - All Above (Editions Mego, 2023)

 

Grand River라는 이름으로 독일에서 활동 중인 네덜란드-이탈리아 출신 사운드 디자이너 겸 작곡가 Aimée Portioli의 앨범.

 

아이메는 대학에서 언어학 및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며, 미디어에서 음악의 커뮤니케이션 기능에 관한 관심을 넓혔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실제로 그녀의 음악 활동은 설치 및 영상 예술과 관련한 작업에도 상당수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녀의 음악적 매력은 단순히 시각적 표현에 의존한 이미지에서 머무르지 않으며, 다분히 가상 혹은 상상의 영역에서 표출될 법한 이미지너리 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어, 언어학도로서 음악을 대하는 독특한 태도, 즉 언어를 넘어선 언어로서의 음악에 대한 깊은 고찰을 반영한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단순히 시각적 혹은 청각적으로 드러나는 현상이 아닌, 일상 주변의 다양한 현상과 존재를, 자신만의 언어를 통해 묘사하는 듯한 독창성은, 아이메의 음악을 다른 뮤지션들과 구분하는 주요한 대목이 아닐까 싶다.

 

Grand River라는 아이메의 활동명처럼, 그녀의 음악은 사물이나 감정이 이루는 하나의 거대한 흐름을 조망하는 통찰과 더불어, 그 과정의 세밀함도 동시에 포착하는데 탁월한 모습을 보여준다. 웅장한 흐름이 지속하는 미니멀한 특성과 더불어, 그 주변의 섬세함을 포착하는 공간 활용은, 마치 우리 주변의 다양한 주제를, 마치 관찰자의 시점에서 기록하고 고찰하는 듯한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흔히들 다루는 전경과 배경의 구분이 아닌, 관찰의 피사계 심도 바꿔가며 연관의 다양성과 복합성을 흐름 속에서 담아내며, 우리 주변의 일상이나 감정에 대한 독특한 접근을 담아내기도 한다.

 

GR의 세 번째 정규 풀-랭스 리코딩인 이번 앨범은, 지난 2021년 7월 세상을 떠난 Editions Mego 설립자 Peter Rehberg에 대한 헌정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번 작업 역시 기존 GR의 음악적 특징을 집약하면서도, 보다 진화한 형식의 완성을 보여주고 있다. 작곡, 사운드 디자인, 믹싱 등의 모든 과정이 마치 하나의 통합적 프로세스를 이루는 듯한 완벽한 구성은 물론, 관찰자적 시점에서 묘사적 표현을 이어가는 음악적 흐름 또한 보다 정교해졌음을 알 수 있다. 피아노를 비롯한 현악, 기타, 오르간 등 여러 악기의 기악적 연주와 보이스, 신서사이저를 이용한 다양한 시퀀싱 및 큐레이팅, 필드 리코딩 등의 다양한 요소를 복합적으로 활용하면서도, 각각의 사운드가 지닌 고유한 톤과 텍스쳐에 대한 세밀한 연출을 통해 개별적 특징도 함께 부각하고 있다.

 

GR의 음악적 기록은 복합적 구성 속에서도 음악적 맥락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일련의 핵심 요소를 전면에 부각하고 있어, 전체적인 플로우에서 안정성을 지속성을 보여준다. 주로 피아노 사운드가 그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신서사이저의 스텝 시퀀싱이나 아르폐지에이터로 연출한 일련의 반복적 흐름을 이어가는 등의 다양한 방식을 활용하며, 진행을 통해 그 역할과 위상에 변화를 주며 자연스러운 음악적 내러티브를 완성하기도 한다. 이러한 전경과 대비를 이루는 배경은 전통적인 대위적 연관성보다는, 공간 속에서 우연적 포착이 이어지는 흐름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사운드 콜라주와 같은 단순한 요소의 병렬은 아니며, 일정한 대칭적 거리를 두고 일련의 효과와 반응으로 작용하는 듯한 논리적 연관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흐름을 이어가는 주요 악기의 사운드는 서서히 추상적 반영을 이루는 주변 음 및 효과와의 관계 속에서 해체되어 다른 음향으로 전환되는가 하면, 때로는 새로운 요소의 개입을 유도하는 장치로 활용되기도 하는 등, 각각의 요소들은 서로를 구조화하는 동시에 진화를 위한 균열을 구성하기도 한다. 주변적 요소로 활용된 사운드가 다른 곡이나 연주에서는 하나의 주인공으로 등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하게 될 만큼, 그녀는 공간적 묘사의 다양성을 이용해 음악적 대상의 다면성을 입체적으로 부각하고 있다. 그만큼 흐름을 이어가며 핵심 사운드의 강한 상징성은 물론, 이와 직접 연관된 텍스쳐나 리버브 등의 효과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주제의 진행 속에서 묘사의 구체성을 이루는 레이어들의 우연적 흐름은 공간 전체의 입체적 형상을 다양한 방식으로 구성하고 있어, 이와 같은 요소들의 조합 자체만으로도 개별 곡이 지니는 고유한 특징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번 앨범에서 이러한 요소의 다양성과 복합적 구성이 장르적 다면성으로 드러나는 것은 무척 흥미롭다. 일렉트로닉, 드론, 모던 클래시컬 등의 복합적 특징을 보여준다. 어느 특정 장르적 경향성을 지향하지 않는 듯한 모습을 종종 연출하기도 하여, 그 자체가 경계의 모호함을 지닌 일렉트로-어쿠스틱을 바탕으로 이번 앨범을 통해 표출하고자 했던 GR의 메시지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단순한 우연적 혹은 경험적 조합에 의한 음악적 완성이 아닌, 일련의 기획에 의해 진행한 작곡의 결과임을 쉽게 직감할 수 있을 만큼, GR의 음악이 전하는 구조적 치밀함은 견고하여, 마치 하나의 음향학적 아키텍처를 감상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현대 작곡의 창의적 일면을 정교한 사운드 큐레이팅을 통해 완성한, 진지하면서도 강한 음악적 개성을 담은 작업이다.

 

 

2023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