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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Hans-Joachim Roedelius & Arnold Kasar - Einfluss (Deutsche Grammophon, 2017)

 

크라우트록의 개척자들 중 한 사람이며 1934년 생인 한스-요하임 뢰델리우스와 30대의 젊은 피아니스트 겸 제작자 아널드 카사의 듀엣 앨범. 두 사람은 베를린 출신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음악적 배경과 활동 내용에서 공통점을 쉽게 찾기 힘들다. 하지만 베를린 출신이라는 점은 음악적 연대를 위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 세계대전 전후 패망 독일의 분단된 수도에 태어나고 자란 음악가들이 실존적 의미에서의 생존을 위해 선택한 자생적 전략은 자신들만의 고유한 사운드를 창조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전위적인 형식의 실험적인 음악이 탄생하고, 현실의 고통을 망각하게 하면서 동시에 미래에 대한 희망이 반영된 전자 음악이 출현한다. 60년대 말 반전반핵 운동을 계기로 확산된 록 음악조차 베를린의 뮤지션들은 일렉트로닉과 아방가르드의 언어로 수용하게 되는데 로델리우스가 활동했던 Cluster와 Harmonia 등이 대표적인 그룹이다. 일렉트릭 댄스 뮤직과 재즈 등의 경계 위에서 작업하는 카사의 음악은 이러한 베를린 음악의 다양한 분화와 발전의 계보와 무관하지 않다. 때문에 이번 앨범은 베를린 음악의 진행 과정 속에서 4,50년의 간극 사이에 어떤 합의점을 유도할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도 반영한다. 2010년 이후 로델리우스는 다양한 분야의 젊은 뮤지션들과의 듀엣 작업을 선보였는데, 앰비언트와 일렉트로닉이라는 공통 요소는 있지만 각각의 앨범마다 추구하는 음악적 지향은 서로 상이했다. 이번 앨범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곡의 구성이나 형식이 아닌 '하나의 흐름'(Einfluss)에 따라 마치 사운드 효과를 만들어가듯 로델리우스가 피아노를 연주하면 카사는 전자 악기를 이용해 인터랙티브한 반응을 만든다. 낮게 깔린 키보드 음과 몽롱하게 연출된 피아노의 사운드는 마치 기존 전자 음악의 전통을 모던 클래시컬의 언어로 추상화한 느낌을 주고 있어 그 어느 때보다 유니크한 음악적 표현으로 완성된다. 80이 넘은 나이에도 로델리우스가 현재 진행형인 이유가 고스란히 담긴 앨범이다.

 

2017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