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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Innesti - Filament and Place (Dronarivm, 2021)

미국 전자음악가 Innesti의 앨범. 최근 3-4년 전부터 꾸준히 자주 발매 작업을 선보였던 인네스티의 첫 레이블 발표 앨범이기도 하다. 덕분에 그동안 유지해온 독특한 솔리튜드가 느껴졌던 칼라 커버 아트와는 다른 흑백에 프레이밍 된 표지를 선보이고 있는데, 묘하게도 그 이미지에는 여전히 인네스티의 감성이 느껴지고 있어 나름의 개인적 일관성은 보여주는 듯하다. 물론 그의 음악 또한 여전한 한결같은 특징을 이어오고 있다. 그의 음악은 화려함이나 실험적 표현은 배제하는 대신 미니멀한 공간 구성 내에서의 지속적 변화를 감지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특히 그의 음악에서 부각되는 특징 중 하나가 공간감인데, 다양한 소스의 사운드를 밀도 있게 배치한 이미지너리 한 묘사가 뛰어나다. 때문에 개인적으로 그의 음악은 포터블 청음 장비를 테스트하기 위해 종종 이용하곤 했는데, 꼭 뛰어난 장비가 아니더라도 인네스티의 음악이 주는 음향에서의 만족감을 체험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비교적 균일한 특징을 지닌 차분한 톤의 일렉트로닉은 풍부한 배음과 하모니를 이루며 잔잔한 연속적 웨이브의 사운드 스케이프를 만들고, 필드 리코딩을 통해 묘사적 분위기를 구체화한다. 무척 느린 진행 속도 탓에 그 느낌은 다분히 몽환적이면서도, 한편에서는 잊고 지냈던 과거의 한 부분을 떠올리게 하는 향수를 자극하기도 한다. 실제로 그는 장소와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감정적 연관을 탐구하는 것을 이번 앨범의 목적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점멸하는 '필라멘트'의 가는 열선과 이미 소멸한 '장소'에서 연상될 수 있는 은유는 어쩌면 이번 작업의 정서적 핵심을 요약하는 가장 명료한 키워드가 아닐까 싶다. 일관된 정서적 긴장과 흐름을 이어가면서도 그 안에서 차분하게 움직임과 변화를 지속하는 음악적 과정은 풍부한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한다. 밀도 있는 사운드 속에서도 사색의 공간을 제공하는 여유야말로 이 앨범의 가장 큰 미덕이 아닐까 싶다.

 

2021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