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기반 한국 록 그룹 잠비나이의 미니 앨범.
기타를 연주하며 피리/태평소 등 국악기를 전공한 이일우는 당시 몸담고 있던 49몰핀즈와 별도로 서브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한예종 전통예술원에서 함께 공부했던 해금 김보미와 거문고 심은용과 함께 서양의 전통적인 밴드 악기인 베이스와 드럼을 더해 2009년 잠비나이를 결성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같은 시도를 흔히들 국악 크로스오보 혹은 국악 퓨전 등으로 통칭했던 당시의 분위기와는 잠비나이는 자신들만의 고유한 음악적 서사를 구축하고 여기에 알맞은 사운드와 그 조합을 발전시켰으며, 더불어 국악기에도 루프 스테이션이나 딜레이 등과 같은 효과를 적극 활용하면서, 기존의 접근과는 다른 그룹만의 유니크 한 창의적 성과를 선보이게 된다. 복합적인 사운드를 중첩하며 이를 빌드-업에 적극 활용하고, 이를 통해 고유한 내러티브를 완성하는 방식은 기존 서양의 포스트-록과 깊은 연관을 지닌 탓에 이와 같은 관점에서 이들의 음악을 감상하는 청자들도 많다. 실제로 Bella Union과 계약한 것만 봐도 이와 같은 분류에 쉽게 수긍할 수 있으며, 해당 장르에서의 평가 또한 정상급의 그룹과 자주 언급되는 것만 보더라도 잠비나이를 포스트-록의 중요한 현상 중 하나로 봐도 전혀 무리가 없을 듯하다. 현재 잠비나이는 드럼 최재혁, 베이시스 유병규가 함께하는 5인조 체제로 활동하고 있다.
잠비나이의 음악적 시도가 해외에서도, 아니 해외에서 더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이들이 국악과 서양 록의 접합을 시도했다는 특수성 하나만으로 설명하기 힘들다. 물론 이 두 가지 장르의 융합에서 새로운 창의적 접근을 발견했다는 것이 이들의 가장 큰 장점인 것은 사실이지만, 잠비나이의 음악 이면에는 메탈, 현대 클래식, 무대 음악, 월드 뮤직 등의 복합적인 요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작용하고 있는데, 멤버들 각자의 개인 활동에서 드러나는 음악적 취향이 은연중에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그룹의 연주에 스며들었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이는 결과적으로 이들 연주의 다면적 깊이를 완성하는 요인으로, 이러한 특징은 잠비나이 음악의 유연성을 의미하기도 하며,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자신들의 음악을 갱신할 수 있었던 내부의 동력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는 초기의 국악 메탈이라는 단편적이고 한정적인 인식에서 벗어나, 록이라는 보편적인 대중적 시각에서부터 실험적인 장르적 영역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분야에서 관심을 받고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는 겉으로 드러나는 잠비나이의 음악적 견고함과 더불어 그룹의 내적 확장성을 동시에 시사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번 EP는 잠비나이의 이러한 확장성의 일면을 엿볼 수 있어 무척 흥미롭다. 이와 같은 모습이 ‘발현’되는 과정에서 전 세계적인 감염병 사태라는 외부적인 요인이 작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각국의 투어 일정이 취소된 상황에서 온라인을 통해 공개한 다양한 시도와 새로운 사운드의 모색 등이, 결과적으로는 이번 앨범에 직간접적으로 반영되었음은 쉽게 알 수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보컬 선우정아가 참여한 트랙에 있다. 보컬 레이어가 개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진행이나 구성에서는 기존 잠비나아의 특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선우정아의 공간을 개방하기 위해 편성을 조합하고 개별 연주 악기의 세밀함을 정의하는 방식에서 그룹의 새로운 면모를 엿보는 듯한 인상을 받기도 한다. 잠비나이 특유의 음악적 내러티브에, 정서적 상실감을 담은 듯한 가사와 몽환적인 선우정아의 목소리가 더해지면서 프로그래시브 록과 같은 분위기도 연출하고 있는데, 각자의 특징을 고스란히 반영하면서도 의외의 시너지를 경험하게 하여, 무척 신선하면서도 인상적이다.
더불어 이번 미니 앨범에서 특별히 주목하게 된 것은 잠비나이가 보여준 사운드의 섬세한 조율과 활용이다. 록 혹은 메탈 특유의 집합적 사운드에 개별 라인의 선명함을 부각하여 다분히 포스트-록 특유의 특징을 따르면서도, 거문고로 세컨드 기타의 역할을 배분하는 듯한 모습이나 해금으로 서양 전통 현악기의 배음을 연출하는 등의 모습에서 잠비나이의 사운드 활용에서 보다 유연한 접근을 보여준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이러한 모습은 국악기 외에도, 넓은 리버브에 펠트 한 톤으로 튜닝된 피아노 사운드는 해금과의 미묘한 앙상블을 완성하면서 모던 클래시컬 계열의 연주를 떠올리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베이스를 볼드 하게 조율하여 거문고의 음색과의 대비를 이루는 등, 각 곡의 세부적인 모티브를 섬세하게 연출하는 방식은 인상적이다. 개별 곡이 지닌 고유한 음악적 내러티브와 더불어, 앨범 전체가 완성하는 웅장한 서사적 흐름 또한 무척 매력적이다. “Once More From That Frozen Bottom (저기 저 차가운 밑바닥에서 다시)” 멤버들의 보컬을 활용해 공간을 입체적으로 확장하는 모습은 이후에 이어질, 선우정아가 참여한 “From The Place Been Erased (지워진 곳에서)”를 예비하는 듯한 트랙을 배열이라는 인상을 주는가 하면, 계속되는 “Until My Wings Turn To Ashes (두 날개가 잿빛으로 변할 때까지)”와 “Candlelight In Colossal Darkness (이토록 거대한 어둠 속 작은 촛불)” 등, 타이틀 그 자체에서 주제의식을 강하게 드러내는 표제적 특징은 물론 서로 다른 구성적 특징을 보여주며, 앨범 전체를 마치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 구조로 엮어내고 있다. 특히 마지막 트랙에서의 점진적인 사운드의 점층을 통해 완성하는 웅장한 결말은 앨범 전체를 위한 피날레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서사의 완벽한 마무리를 제공하고 있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이일우의 이야기가 없었더라도, 잠비나이의 이번 앨범은 음악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위안을 제공하고 있어, 이들의 연주에 담긴 강한 힘을 느끼 수 있다. 이러한 창의적 에너지가 세계 각국에서 통용되는 보편성을 지닌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10여 년 전 온스테이지 무대를 통해 접했던 이들의 신선한 음악적 의식이 더 넓은 여러 국가의 무대를 경험하며 더욱 견고하게 확장되었듯이, 10년 후에도 잠비나이의 새로운 작업을 통해 오늘이 이 앨범을 회상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20221116
related with Jambin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