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출신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장-미셸 블라이스의 신보. 대중으로부터 큰 주목을 받았던 데뷔작 Il (2016)에 이은 블라이스의 두 번째 앨범이다. 흔히들 모던 클래시컬 계열로 분류되는 블라이스의 음악은 현대 작곡의 다양한 작법으로 완성된 곡을 뛰어난 실력의 연주로 재현하는 능력을 보여주고 있어 장르 내의 다른 뮤지션과는 확실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그의 음악이 많은 사람으로부터 큰 호응을 받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대중의 취향과 접점을 형성할 수 있는 요소들을 고루 갖추고 있기 때문인데, 정통적인 클래식의 어법은 물론 스스로 모티브를 발전시켜 음악적 공간을 개방하는 즉흥 연주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다. 그의 음악은 사적 정서에 기대어 표현되는 다른 모던 클래시컬 계열의 일반적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그 모든 진행을 서정성이라는 일반화된 언어로 표현하지 않고 감정 내부의 동요와 변화까지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보다 포괄적인 표현 영역을 지니고 있다. '무엇이 당신을 화나게 하는가'라는 질문에 망설이다 '모르겠다'라고 대답하며 이어지는 연주는 일상화된 분노에 스스로 무력해지는 인간의 내면을 정서의 흐름에 따라 그 기복까지 묘사하는가 하면("Outsiders"), 어둠에 대한 지속적 공포("Blind"), 존재의 불확실성과 혼란("God(s)") 등 그동안 쉽게 다뤄지지 않았던 정서 이면의 숨은 감정까지 블라이스 자신의 진솔한 언어로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다. 피아노의 주도적 역할을 강조하면서도 전자 음향 효과도 활용하고 있는데, 이 두 가지 요소의 관계는 친밀함을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곡의 진행에 따라 언제든지 혼란과 긴장으로 교란될 수 있는 미묘함을 품고 있다. 블라이스의 가장 큰 매력은 이와 같은 복합적 정서와 미묘한 관계 등을 섬세하게 재현할 수 있는 뛰어난 연주 실력에 있다. 어쩌면 인간의 일상적 대화보다 더 내밀한 서술을 가능하게 한 것이 연주 실력을 바탕에 둔 탁월한 표현력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주변이나 내면과 마주하여 이토록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겠는가.
2018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