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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Joep Beving - Hermetism (Deutsche Grammophon, 2022)

네덜란드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Joep Beving의 솔로 앨범. 윱은 Solipsism (2015), Prehension (2018), Henosis (2019)로 이어진 피아노 솔로 작업을 선보이고, 이는 이후 Deutsche Grammophon을 통해 Trilogy (2021)로 통합을 이룬다. 3부작을 완성한 윱은 자신의 다음 작업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영화와 연극을 위한 음악에서 답을 찾으려 하기도 했지만, 이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피아노 솔로곡을 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이를 위해 “3부작을 만들면서 배운 모든 것을 사용하고 싶었다"는 뜻을 밝히게 된다. 이렇게 탄생하게 된 그의 네 번째 솔로 앨범에서는 스스로 “집과 같은 편안함을 느끼고 자신과 주변 환경이 조화”를 이루는 연주를 선보이게 되는데, 평소 윱의 사색적인 태도와 생활을 생각해본다면, 이 안에는 피아니스트의 무수한 철학적 고민과 현실에 대한 사고를 반영한 결과물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에르미티즘’이라는 타이틀이 지칭하고 있는 성서고고학이나 종교사적 배경은 언급하지 않더라도, 앨범에는 고대 상형 기호가 지닌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인과성과, 진리가 지닌 지속적 혹은 순환적 균형을 음악으로 표현했음을 느낄 수 있다. 사고의 인과성은 멜로디로 표현되고 순환적 균형은 리듬으로 완성된 음악은 미니멀한 구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 진행은 일련의 대칭적 진화를 형상화하는 듯한 모습으로 완성되는데, 이와 같은 음악적 플로우를 시각적으로 가장 절묘하게 묘사한 것이 Jonathan Niclaus가 그린 앨범의 커버 아트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와 같은 윱의 작업이 단순한 관념적 사고의 산물이 아님을 앨범에 담긴 여러 트랙들을 통해 알 수 있는데, 현재 그가 거주하고 있는 파리의 단면과 그 안에서의 경험을 묘사하는 듯한 곡들은 물론, 수도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기존 작가의 원작을 떠올리게 하는 테마 등을 활용해, 피아니스트는 자신의 현재성을 확인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예술과 문화를 역사로 담지한 파리에 대한 헌정은 단순한 낭만으로 끝나지 않으며, 이 안에는 오늘날 문명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감염병 사태에 대한 절망과 희망을 특유의 은유적 표현으로 담아내기도 한다. 스스로 이번 작업을 두고 “전염병에 대한 나 자신의 약”이었다는 언급은 삶과 존재의 지속적인 균형에 관한 에르미티즘의 교훈과 무관하지 않으며, “듣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공감”을 염원하는 윱의 마음 또한 담겨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윱의 피아노 연주는 고전주의에서 후기 낭만파는 물론 미니멀리즘과 현대 고전에 이르는 다양한 표현을 아우르고 있지만, 그 내면에 담긴 사색적 반영은 그 형식적 차이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가장 단순한 구성의 연주는 피아니스트의 성찰을 더욱 깊이 있게 표현하고 있고, 이를 통해 전달되는 위로와 공감은 큰 힘을 발휘하고 있어, 윱의 말대로 “피아노 솔로곡을 하는 것이 맞[았]다”.

 

20220408

 

 

 

related with Joep Beving

- Joep Beving - Prehension (Deutsche Grammophon, 2017)

- Joep Beving - ZERO: Hanging D Remixes (Deutsche Grammophon, 2021)

- Joep Beving - Trilogy (Deutsche Grammophon,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