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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Johan Agebjörn - Subtracted Soundscapes (Spotted Peccary, 2023)

 

스웨덴 프로듀서 겸 작곡가 Johan Agebjörn의 앨범.

 

1978년생인 요한은 2000년대 초부터 클래식 피아노를 비롯해 폭넓은 장르에 걸쳐 여러 음악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다양한 활동을 펼쳤는데, 그의 개인 작업은 주로 앰비언트 일렉트로 혹은 아틱 앰비언트 등으로 불리는, 일렉트로 비트에 앰비언트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북유럽의 전통과 관련이 있다. 북미 스타일의 스페이스 앰비언트를 북유럽 양식으로 새롭게 재현했다고 느끼게 할 만큼, 음악에는 풍부한 뉘앙스를 담고 있으며, 때로는 SF적인 신비감을 담아내기도 한다.

 

이번 앨범은 요한이 지금까지 선보인 작업들 중 8편을 선곡해 비트리스 양식으로 새롭게 재구성한 작업을 담고 있는데, 이는 ‘빼다’라는 제목의 타이틀을 통해 함축적으로 표현한 듯하다. 차 안에서 자신의 이전 음악을 듣던 중, 이 곡을 비트 없이 만들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마침 당시 어린 자녀를 재운 뒤 주로 퓨어 앰비언트 음악을 많이 들었던 탓에, 이와 같은 기획을 진행한 것으로 전해진다. 모든 작업이 완료된 이후 자신이 오리지널 양식보다 새로운 스타일이 더 마음에 든다고 소감을 밝히고 있어, 이후 요한의 음악이 어떻게 변할지 짐작하게 하는 앨범이기도 하다.

 

‘빼기’라는 앨범의 제목과는 달리 이번 작업은 단순히 기존 원곡에서 비트의 레이어만 걷어낸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오리지널에서 비트가 차지하는 역할이 단순히 감각적 흐름을 이어가는 요소로만 작용하지 않고, 곡 구성의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기도 하는 탓에, 이와 같은 작업은 남아 있는 사운드와 요소들 전체의 기능과 역할을 새롭게 재정의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기둥만 남기고 집을 새로 짓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기둥만 빼고 기존 재료들로 다시 건축하는 과정이라고 봐도 될 만큼, 이번 작업에서는 무엇인가 한 가지 빠진 대신, 기존 사운드에 새로운 기능적 역할이 더해진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때문에 사운드의 캐릭터도 미묘하게 달라졌고, 구성 또한 보다 간결한 형식을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음악적 스타일 역시 퓨어한 양식의 앰비언트에 가까워진 느낌을 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기존 요한의 원곡이 품고 있던 우주적인 신비감이 보다 포용력 있고 포근한 뉘앙스로 전해지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비트가 사라진 앨범의 음악은 사운드와 구성에서 미니멀한 특징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각각의 사운드 사이에 직관적인 연관을 선명하게 부각하지는 않아, 마치 서로 일정한 거리에서 상대의 흐름을 관조하는 듯한 무심함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이와 같은 조합은 다양한 방식의 잔잔한 하모니를 품은 사운드스케이프의 고유한 플로우를 완성한다. 트랙에 따라 각기 다른 친숙한 소스들을 활용하면서도, 곡의 구성과 흐름 속에서 각자의 미묘함을 살린 방식으로 배열하여 평온함을 지속하고 안정적인 플로우의 연속성을 담아내는가 하면, 때로는 몰입적 긴장을 유도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나의 코드로 이루어진 피아노의 간결한 아르페지오로 흐름을 이끌면서도 주변 소스와 구성의 섬세한 변화를 유도하여 미니멀한 플로우에 음악적 밀도를 지속하는가 하면, 낮게 깔리는 안정적인 드론의 플로우 위에 빛의 흐름과 궤적을 소리로 그려내는 듯한 우주의 고요 속 변화를 이어가기도 한다. 보이스를 이용한 트랙에서는 몽환적 신비감을 연출하기도 하고, 친숙한 신스 베이스나 주노 사운드는 그 이면에 감춰진 정적 표현을 드러내는가 하면, 때로는 필드리코딩 샘플을 활용해 묘사적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한다. 개별 사운드의 캐릭터 변화는 제한하는 대신, 주변 음향과의 관계 속에서 섬세한 변화를 모색하며, 흐름 속에서 새로운 레이어를 중첩하여 극적 변화를 유도하기보다는, 고유한 밀도의 연속성을 강조한다. 그 밀도 또한 사운드의 하모닉스라는 인상보다는 공기감과도 같은 여백에 의해 채워지는 느낌이라, 트랙에 따라 각기 다른 구성의 특징을 담고 있음에도, 앨범이 전체는 나름의 일관된 분위기를 완성하고 있다.

 

서로 다른 시기에 발표한 원곡에 대한 재구성 작업을 담고 있기 때문에, 앨범 전체는 다양한 구성과 분위기를 담고 있지만, 요한이 평소 주요하게 활용하고 있는 사운드가 지닌 상징적인 특징으로 인해 평소의 신비감을 여전히 재현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구성의 간결함을 강조하고 있어, 광활하거나 웅장하지는 않지만, 오히려 이와 같은 잔잔하고 안정적인 흐름이 평온한 몰입을 유도하는가 하면, 때로는 소리의 여백 속에서 풍부한 상상력을 개방하기도 한다. 미니멀한 표현 속에서도 요한의 우주를 담은 앨범이다.

 

 

2023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