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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John Børge Askeland - The Realization (ARC, 2023)

 

노르웨이 베이스 연주자 겸 작곡가 John Børge Askeland의 쿼텟 앨범.

 

대학에서 재즈와 작곡을 공부한 이후 1990년대 초부터 음악계에 몸담으며 수십 년 동안 관련 분야에서 활동을 이어왔지만, 욘의 이름은 좀처럼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연주자로서뿐만 아니라 작곡 및 편곡자로 오랜 기간 활동하며 다수의 작업에 관여한 것으로 전해지지만, 자신의 이름으로 작업을 선보이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이며, 이번 앨범은 욘의 첫 타이틀로 기록된다. 이번 녹음에는 트럼펫 Arve Henriksen, 피아노 Eyolf Dale, 드럼 Helge Andreas Norbakken 등,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뮤지션들이 참여하고 있는데, 아르베 및 헬게와 인연은 학창 시절부터 현재까지 다양한 협력 관계를 통해 이어져 온 것으로 전해지며, 비록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더라도, 현지 업계에서 욘이 차지하고 있는 음악적 입지를 짐작할 수 있다.

 

욘은 주로 작곡 활동에 전념해 온 것으로 전해지며, 이번 앨범은 그의 작품 세계를 거물급 뮤지션들의 차분한 호흡을 통해 인상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그의 작곡은 일상의 소소한 순간을 정적으로 기록한 듯한 깊은 서정을 품고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자연의 일부와도 같은 고요와 닮아, 때로는 풍경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와 같은 서정과 서경의 조화는 감성적이면서도 풍부한 시각적 상상력을 제공하기도 하고, 고요한 정경 속에서 꿈틀거리는 다양한 내면의 정서를 자극하기도 한다. 북유럽 특유의 냉기가 반영되어 있음에도, 일상적 정서를 모티브로 이루어진 작곡을 통해 인간적인 온기를 품으며, 마치 소소한 감정의 흐름을 소리로 전달하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설득보다는 공감의 방식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는데, 우울함부터 소소한 환희에 이르는 다양한 감정은 절제된 진솔함을 특징으로 한다.

 

이와 같은 작곡의 분위기가 듣는 이에게 온전히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은, 당연히 연주자들의 뛰어난 음악적 재현 덕분이다. 작곡 자체가 연주자들의 자율적 표현이 개입할 수 있는 풍부한 공간을 개방하고 있어, 개별 뮤지션들의 유니크한 표현을 최대한 활용하면서도, 모든 진행이 균형과 조화에 자연스럽게 수렴하는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다. 통상적인 재즈의 진행에 비교적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각 공간의 기능적 역할 또한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서로의 호흡에 자연스럽게 안착하면서도 자신의 숨결을 섬세하게 드러내기도 하고, 때로는 침묵을 통한 개입으로 자신의 공간을 부각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자율성과 유기성의 조화는 안정적인 호흡으로 이어지는 차분한 진행 속에서도 끊임없는 동요와 움직임을 연출하기도 하는데, 이는 마치 감정의 다양한 흔들림을 묘사한다는 느낌으로 전해지고 있어, 이들의 연주가 고요로 향할수록 더 큰 내밀함을 완성한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앨범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반영한 듯한 노르딕 재즈의 전형적인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욘의 작곡과 뮤지션들의 연주가 완성하는 곡의 분위기는 차갑고 때로는 우울하기도 하지만, 서로의 공백과 거리를 자신들의 체온으로 채워가며 음악을 완성하는 과정은 아름답고 찬란하다. 차갑고 고요한 풍경 속에 정서적 온기와 역동을 담은 앨범이다.

 

 

2023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