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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Julia Hülsmann Quartet - The Next Door (ECM, 2022)

 

독일 재즈 피아니스트 Julia Hülsmann위 쿼텟 앨범.

 

율리아는 재즈를 전공한 후 여러 개별적인 활동을 거쳐 1990년대 말에 자신의 트리오를 결성하며 현재의 음악적 입지를 다지게 된다. 지금까지 발매한 그녀의 대부분의 작품은 트리오를 기반으로 이루어졌으며, 이를 확장하거나 편성에 유연성을 더해 규모에 변화를 주는 방식이었는데, 여기에는 율리아의 오랜 음악 동료이자 남편인 베이스 연주자 Marc Muellbauer의 조력도 큰 역할을 차지한다. 율리아의 ECM 데뷔 또한 드러머 Heinrich Köbberling가 참여한 트리오로 이루어졌으며, 20년 가까이 이어져 온 이와 같은 인적 구성은 이번 앨범에서도 중요한 토대를 이루고 있음은 당연하다.

 

율리아에게 있어 쿼텟은 트리오의 확장으로 볼 수 있는 동시에, 기존 편성의 공간과 역할을 새롭게 정의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단순히 3인조 편성에 라인 하나를 더하는 기능적 접근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트럼펫/플루겔호른 연주자 Tom Arthurs와의 쿼텟 작업도 그러했고, 이번 녹음에 참여하고 있는 색소폰 Uli Kempendorff와의 연주 또한 각 연주자의 개별적 특징을 반영한 유연한 편성의 활용을 담고 있다. 이번 쿼텟 리코딩은 이전 Not Far From Here (2019)와 같이 색소폰을 포함하는 포맷으로 이루어졌는데, 전체적인 내용에서도 많은 유사점을 공유하고 있어 후속작의 느낌도 강하며, 다른 한편에서는 현재의 쿼텟 라인-업에 대한 활동의 지속성을 염두에 둔 듯한 일련의 진화 또한 경험하게 한다.

 

이번 녹음에서도 율리아를 비롯한 멤버 전체의 고른 참여로 완성한 자신들의 오리지널을 연주하고 있으며, 전작에서의 David  Bowie와 Pat Metheny의 “This Is Not America”를 염두에 두기라도 한 듯, Prince의 "Sometimes it Snows in April”를 쿼텟의 언어로 재해석한 커버 또한 포함하고 있다. 이번 앨범에서도 포스트-밥을 기반으로 하는 연주에 모달 어프로치를 활용하고 있어, 전통적인 스텐스에서의 음악적 표현을 명확히 하고 있으면서도, 공간 구성에서의 모던한 특징을 더해 오소독스 한 규범적 관행을 피하는 대신, 쿼텟 특유의 유연한 음악적 전개를 이어가게 된다. 특히 전작 이후의 투어 일정을 통해 축적된 팀워크와 경험은 물론, 봉쇄로 인해 모든 일정이 단절된 상황에서도 꾸준히 이어진 교류를 반영하기라도 하듯, 공간 구성에서의 유연성과 개방성은 앙상블은 물론 솔로의 영역에서의 자연스러운 전환과 다양한 대위적 중첩을 완성하며 한층 여유롭고 농밀한 연주를 완성하고 있다.

 

앨범 전체적으로 연주에서 앙상블이 이루는 조화와 균형은 마치 하나의 일관된 밀도를 지속하기라도 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것이 서로 간의 텐션에 의해 조율되는 방식이라는 인상보다는 상호 절재에 의해 완성된 듯한 느낌을 주고 있어, 한편에서는 여유롭다는 분위기를 전달하기도 한다. 물론 개별 솔로의 진행에서 압축적이고 간결한 프레이즈에 의해 이러한 분위기가 은근히 강조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각각의 라인이 이루는 은유적인 화려함이나 기교의 완결함까지 감춰지는 것이 아니기에 그 매력은 참으로 묘하다. 피아노와 색소폰은 다양한 대위적인 공간 구성을 이루는 동안에도 메인과 카운터의 고전적인 역할에 얽매이지 않고 각자의 고유한 공간을 유연하게 정의하며 정교한 합을 이루는 과정은 무척 자연스러우면서도 치밀하여, 단순한 개념적인 표현으로 정의하기 힘든 복합성을 지니기도 한다. 라이너 한 진행을 이루면서도 화성이나 하모니의 구성에서의 의외성과 다양성은, 전체 공간이 이루는 균일한 음악적 밀도에도 불구하고 미묘한 긴장을 연출하는 요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솔로나 멜로디 라인의 여러 프레이즈에 같은 방식으로 개입하면서도 균형의 기준점 역할을 수행하는 베이스는 물론, 일정한 거리를 두고 이루어진 공간의 여백에 부피감을 적절하게 가미하는 드럼 또한, 단순한 기능적인 역할로 한정할 수 없는 능동성을 지니고 있어, 쿼텟 특유의 고유함을 완성하는 핵심임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전통과 그로부터 파생한 다양한 성과를 체현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이를 자신들만의 고유한 공간 해석으로 새롭게 정의하는 방식에서 쿼텟만의 창의성을 엿볼 수 있다. 전작을 통해 구축한 쿼텟의 독창성을 더욱 정교하게, 그러면서도 여유롭게 발전시킨 인상적인 성과를 담고 있는 앨범이다.

 

 

2022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