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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Leimer - The Starting Errors (Palace of Lights, 2022)

K. Leimer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미국 전자음악가 겸 작곡가 Kerry Leimer의 앨범. 케리는 1970년대 중반부터 간단한 악기들과 마그네틱 릴 테이프를 이용해 실험적인 음악들을 제작하며 음악 활동을 시작한다. 당시 유럽에서 행해진 전자음악의 실험으로부터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추상 미술을 소리로 개념화하는 작업 방식을 취하기도 했으며, 루프, 텍스쳐, 노이즈 등을 이용한 일련의 음악적 실험을 선보이게 된다. 그는 자신을 포함한 주변 뮤지션들의 음원에 대한 상업적 보호를 위한 목적으로 지금의 Palace of Lights 레이블을 설립하기도 했고, 펑크 및 포스트 펑크의 표현을 확장하기 위한 Savant 프로젝트를 주도하기도 했지만, 갑작스럽게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긴 침묵에 들어간다. 20년이 지나 케리는 초기 작업들을 정리한 A Period of Review: Original Recordings 1975-1983 (2014)를 발매하며 다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되는데, 자신의 개인 작업은 물론 여러 뮤지션들과의 공동 창작을 선보이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작업은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관행적으로 행해지는 파괴적인 재앙에 대한 비판적인 사고를 담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이는 켈리의 최근 작업에서 보여주는 특유의 어둡고 무거운 이미지와 어울려 인상적인 표현의 완성을 이루고 있다. 이번 앨범에서의 가장 큰 특징은 익숙한 연주 악기들의 활용에 있다. 펠트 한 톤의 사운드를 연출하기 위해 준비된 피아노를 비롯해, 스트링, 기타, 드럼 및 퍼커션 등 통상적인 연주 악기의 비중이 높아, 흔히들 말하는 일렉트로-어쿠스틱의 경향적 특징을 보여주는 듯하면서도, 자신만의 유연한 구조적 체계 안에서 연주를 조합하고 있어 독특한 실험적 표현을 포함하는 앰비언스를 완성한다. 다만 익숙한 연주 악기들의 사운드가 주를 이루지만, 그 요소들이 조합을 통해 드러나는 방식은 일상적 통용과 거리를 두는 듯한 낯선 모습을 띠는 것이 사실이다. 이와 같은 이유에는 진행에서의 형식적 구성을 해체하는 대신 사운드를 중심으로 하는 구조의 유기성을 치밀하게 엮어내는 접근과 관련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렇다고 복잡한 구조를 통해 그 형식을 재구성하는 것도 아니어서 그 느낌은 무척 독특하다. 때로는 피아노의 자유로운 즉흥적 모티브의 전개에 미니멀한 현악의 라인을 배열하고 배경을 완성하는 소소한 이펙트의 레이어링 만으로 음악이 완성되는가 하면, 일렉트로닉을 기반으로 하는 드론 혹은 사운드스케이프를 중심으로 주변적인 여러 악기의 단절적인 여러 음향을 배치해 독특한 음악적 효과를 연출하기도 한다. 순간을 이루는 구조에서는 단순한 모습을 보이지만, 플로우 속에서는 각 요소들 사이의 관계가 이루는 무수한 변형과 굴절을 통해 복합적인 형식적 구성을 이루는 듯한 모습으로 드러나며, 개별 사운드 또한 단 한순간도 원형의 형질을 유지하지 않고, 끊임없이 수축과 팽창을 거듭하는가 하면, 분절과 굴절을 통해 미세한 움직임을 이어가고 있다. 이와 같은 진행에서 종종 개입하는 의외성은 구성의 유연성을 보여주는 일면처럼 들리기도 하여 흥미롭고, 어쿠스틱 연주 악기와 일렉트로닉의 사운드가 개별적 고립 공간 속에서 지속적인 인과적 연관성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연출하는 동적인 텐션 또한 인상적이다. 평소 켈리의 음악에서는 활용되지 않은 내레이션이 등장하는데, Tallula Bentley의 담담한 결단을 담은 목소리를 통해 이번 앨범이 지닌 고유한 주제를 선명하게 부각하는 듯한 모습도 이색적이다. 다양한 음향적 텍스처의 대조, 분절된 사운드의 연속, 글리치 한 공간 배경 연출 등을 통해 완성한 어두우면서도 비장한 풍경만으로도 이 앨범이 지닌 매력은 충분하다.

 

2022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