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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Keith Jarrett, Gary Peacock, Jack DeJohnette - After The Fall (ECM, 2018)


키스 자렛, 게리 피콕, 잭 디조넷으로 구성된 이른바 스탠더드 트리오의 신보. Manfred Eicher의 제안에 따라 Standards, Vol. 1 & 2 (1983)와 Changes (1983)를 연이어 발표한 이후 30년 가까운 활동을 유지했지만 2009년에 녹음된 Somewhere (2013) 이후의 트리오 기록은 더 이상 음반으로 접하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이 앨범 역시 새로운 녹음이 아닌 기존에 발표되지 않았던 기록을 뒤늦게 발표한 것으로 1998년 말 뉴저지 주 뉴어크에서의 공연을 담고 있다. 시기적으로는 만성피로 증후군으로 활동을 중단했던 2년간의 공백 직후에 열린 공연이며 1999년 파리에서의 트리오 공연을 담고 있는 Whisper Not (2000) 보다 앞서 펼쳐진 라이브다. 공식적으로는 자렛의 몸과 마음의 상태가 완전히 회복되기 이전에 녹음되었지만, 전후에 발표된 트리오 음반들과 비교해도 그의 연주력은 이미 온전하다는 것을 이번 앨범은 보여주고 있다. 자렛 자신과 트리오는 물론 우리에게도 낯익은 스탠더드 넘버들을 대상으로 이미 친숙한 방식의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어쩌면 가장 안전한 음악적 전략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이미 자신만의 방식으로 완성된 트리오의 음악적 문법 안에서 진행된 연주라고 봐도 크게 어긋남이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기존의 관행을 되풀이한 매너리즘이라고 비난할 수 없는 것이, 이들이 제시한 트리오의 문법 자체가 이미 새로운 혁신을 표상하는 아이콘이기 때문이다. 가장 고전적인 스탠더드를 대상으로 가장 전통적인 피아노 트리오 포맷을 기반으로 가장 근본적인 문법의 전위를 이룬 그룹은 이들 스탠더드 트리오가 유일하다. 피콕이 예전에 밝혔듯이 이들 트리오에게 있어 콘셉트나 이론 등은 의미가 사라진 지 오래이며 그 어떠한 설명도 필요 없는 무한한 자유의 공간에 들어선 경험을 우리에게 보여줬다. 오늘날의 기준에 있어서는 이미 이들의 연주가 보편적인 언어가 되고 이들을 넘어선 새로운 혁신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이 모든 과정이 가능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스탠더드 트리오의 실천이 기준이 되었음을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2018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