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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Kekko Fornarelli - Abaton (Eskape, 2018)


이탈리아 출신 피아니스트 케꼬 포르나렐리의 신보. 포르나렐리의 통산 다섯 번째 앨범이며 트리오로 녹음된 세 번째 타이틀이다. 2000년대 중반 데뷔 당시만 해도 유러피언의 시각에서 수용된 정통의 어법에 기반을 둔 연주를 틀려줬다면 Kube라는 트리오 타이틀로 발매된 Room of Mirrors (2011)에서는 EST의 영향을 반영한 듯한 변화를 엿볼 수 있었으며 Outrush (2014)에 이르러서는 본격적으로 자신만의 유니크한 트리오의 표현을 선보이게 된다. 이번 앨범은 전작에서 보여줬던 음악적 스탠스를 보다 분명하게 강조하고 있다. 4년 만에 발표한 이번 앨범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포르나렐리는 피아노 외에도 신시사이저와 샘플링을 이용한 표현을 선보이고 있으며 멤버 또한 Federico Pecoraro (eb)와 Dario Congedo (ds)로 동일하다. 전자 악기와 샘플링의 적극적인 활용에 의해 구성되는 사운드는 전통적인 트리오의 범위를 넘어선다. EST의 다이내믹과 이탈리안 특유의 서정성이 전자 악기의 효과에 의해 하나의 표현으로 완성되는 모습은 새롭다기보다는 절묘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이들이 활용하고 있는 다양한 음악적 요소들은 이미 익숙한 것들이지만 이들을 단일한 체계로 용해하고 일관된 언어로 구사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장르적 범주에 고착된 우리의 상상력을 뛰어넘고 있다. 때문에 재즈라는 장르와 퓨전이라는 범주의 선입견을 뒤로하고 이들의 음악을 듣다 보면 다양한 음악적 경험의 가능성이 개방된다. 때로는 이탈리안 아트록의 신비한 사운드 스케이프가 펼쳐지기도 하며 어느 대목에서는 웅장한 심포닉 록의 여운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재즈의 문법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재즈 트리오에서 표현의 확장을 시도했던 많은 음악적 실천들 중 포르나렐리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이러한 실천적 행위의 과정에서도 정교한 코드 진행과 세밀한 라인을 통한 서사적 내러티브까지 확보함으로써 자신만의 유니크한 면모를 드러낸 점도 주목해야 한다. 꽁꽁 숨겨놓고 나만 듣고 싶은 앨범이다.

2018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