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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Kevin Hearn - There and Then (Celery, 2022)

캐나다 키보드 및 기타 연주자 Kevin Hearn의 앨범. 케빈은 1980년대 중반에 밴드 활동을 통해 음악계에 데뷔했으며, Look People과 Rheostatics와 같은 밴드를 거쳤고 1990년대 중반에는 Barenaked Ladies에 합류해 현재까지 멤버로 활약하고 있다. 자신의 그룹 Kevin Hearn & Thin Buckle을 이끌기도 했고, Lou Reed의 투어 밴드의 일원으로 함께한 기록 또한 유명하다. 케빈은 밴드 활동과 더불어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개인 작업도 선보이곤 했는데, 이번 앨범은 그중 가장 최근의 결과물인 셈이다. 지금까지 케빈이 발표한 개인 작업의 경우 대부분 밴드 음악의 연장 속에서 자신의 작곡이나 음악적 표현에 중심을 두었지만, 이번 앨범은 Solo Piano Improvisations라는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존과는 다른 양식을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본격적인 모던 클래시컬 계열의 연주라고 하기에는 장르적 경계가 여전히 모호하지만, 그 분위기나 경향적 특징이 다분히 반영되어 있으며, 애트모스페릭 한 공간감을 강조하거나 몇몇 곡의 경우 피아노 외 키보드를 이용해 사운드 스케이프나 배음 및 효과를 구성하는 등, 앰비언트적인 특성 또한 느껴지기도 한다. 때문에 듣기에 따라서는 다큐멘터리 영화 There Are No Fakes (2019)에서 케빈이 담당했던 OST 중 일부가 연상되기도 하며, 실제로 피아노 중심의 몇몇 트랙은 이번 앨범과 유사한 음악적 양식을 공유한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이번 작업은 피아노가 중심 모티브를 이루면서도, 연주 그 자체보다는 사운드 및 그 악기를 통해 연출 가능한 이미지너리 한 표현에 초점을 맞췄다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각각의 곡은 개별 테마와 특징에 맞춰 서로 다른 톤의 피아노 사운드로 튜닝되어 있으며, 주변적인 효과를 연출하는 전자 악기의 개입에서도 개방적인 스텐스를 보여주고 있다. 단순한 테마를 확장해 신중한 즉흥적 표현을 이어가면서도, 악기 고유의 서스테인 외에 깊은 리버브를 동시에 사용하거나 일렉트로닉을 이용한 옅은 사운드 스케이프를 펼침으로써 투명한 안개와도 같은 몽환적 이미지를 완성하는가 하면, 펠트 한 톤으로 반복되는 짧은 몇 마디의 반복적인 악절이 딜레이를 거치며 굴절되거나 서로 중첩되어 보다 복합적인 음악적 표현으로 진화하는 등 소리 그 자체와 이를 통해 구현되는 다양한 효과에 많은 신경을 쓴 흔적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물론 익숙한 일상적 피아노 톤이 적용된 연주 중심의 곡도 존재하지만, 여기에도 공간계 효과를 더해 현실과 일정한 거리를 둔 듯한 이미지너리 한 특징이 보인다. 본격적으로 새로운 장르적 접근을 선보였다고 보기에는 어렵지만, 그래도 이와 같은 시도 자체만으로도 신선함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2022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