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ound

Kristjan Randalu - Absence (ECM, 2018)


에스토니아 출신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란달루의 ECM 데뷔 앨범. Dhafer Youssef를 비롯하여 다른 뮤지션의 피아니스트로 그동안 보여준 섬세한 심미적 표현들을 떠올리면 ECM에서의 앨범 발표는 그의 음악 커리어에서 어쩌면 당연한 순서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2000년대 초에 재즈계에 입문했고 뒤늦게 2010년대에 들어서 평단의 시선을 끌기 시작했지만, 그의 역량에 비교하면 폭넓은 대중적인 인지도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나마 그의 이름을 주목하게 된 계기 중 하나가 Ben Monder와 함께 Fresh Sound New Talent에서 발표한 Equilibrium (2012) 덕분이었는데, 이번 앨범은 피아니스트와 기타리스트가 6년 만에 재회한 녹음인 셈이다. 또한 이번 앨범에는 핀란드 출신의 드러머 Markku Ounaskari가 참여하고 있어 프로듀서 Manfred Eicher가 란달루에게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번 앨범은 6년 전 몬더와의 듀엣 작업과는 확연히 다른 음악적 언어와 표현으로 이루어져 있다. 단순히 드럼이 더해진 트리오 구성이라는 형식에서의 차이뿐만 아니라 공동의 합의로 형상화하는 음악의 내용에서도 완전히 새로운 창의를 담고 있다. 피아노-기타-드럼이라는 트리오 구성의 예는 종종 볼 수 있지만, 이 앨범에서 보여주고 있는 공간의 활용은 유연하면서도 내밀하다. 마치 세 개의 레이어가 배열을 달리하며 진행 과정 중에 다양한 모티브를 형상화하는 모습은 과감하지만, 인터액티브한 상호 반응이나 개별 공간에 대한 디테일을 완성하는 순간은 무척 섬세하다. 피아노와 기타, 심지어 심벌즈에 의해 형상화되는 사운드의 이미지는 중고역대에 몰려 있지만, 하모니를 이루며 전해지는 느낌은 무척 볼드하다. 밀도 있는 사운드는 트리오의 범위를 넘어서 풍부한 공간감을 제공해주는데, 장르적 포괄성을 지닌 란달루의 창의적인 오리지널들과 매칭을 이루어 음악 그 자체의 깊이를 더욱 강조한다. 기존에 접했던 란달루의 모습과는 다른 느낌도 존재하지만, 어쩌면 피아니스트에게 내재한 본연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난 작업이 아닌가 싶다.


2018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