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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Last Days - Seafaring (n5MD, 2017)


영국 출신 앰비언트 뮤지션 Graham Richardson의 프로젝트 그룹 라스트 데이즈의 정규 다섯 번째 앨범. 그레이엄은 첫 풀타임 레코딩이었던 Sea (2006)에서 선보인 '바다'라는 에피그라프를 11년 만에 다시 불러왔다. 하지만 그 동안 그레이엄이 발표했던 앨범들 속에는 바다는 마치 일상처럼 늘 존재했으며 그의 음악이 묘사하는 정서와도 많이 유사하다. 어쩌면 그가 생활하는 일상의 공간이 바다와 가깝고 자신이 감정의 교감을 이루는 주요한 대상인 이유도 있을 것이다(시각 디자인을 전공한 그가 촬영한 사진들을 보더라도 바다가 자주 등장한다). 모던 클래시컬이나 앰비언트 계열의 음악 중에는 이와 같이 일상과 맞닿은 테마들이 자주 보인다. 1968년 이후 자연, 환경, 인류, 자유 등과 같은 거대 담론들이 수용된 뉴에이지라는 장르적 흐름으로 이어졌다면, 정치-문화의 해체를 경험한 이후에는 일상과 개인의 경험이 음악이 주요 모티브가 되고 있다. 마이클 잭슨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강력한 프로파간다를 전했다면 이들은 '당신과 다르지 않은 내가 여기에 있다'는 점을 소박한 개인의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는 샘이다. 이 앨범은 영국의 탐험가 Ernest Shackleton의 항해 일지를 모티브로 하고 있지만, 서사적이거나 서술적이라기 보다는 소박한 개인의 언어에 기초한 묘사적 테마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건반 악기를 중심으로 어쿠스틱과 일렉트로닉 효과를 적절하게 배치함으로써 마치 공기와도 같은 사운드의 질감을 만들어내는 점은 인상적이다. 또한 제목과 일체감이 느껴지는 미니멀한 멜로디의 테마와 곡의 진행은 자연스러운 정서적 공감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특히 바다라는 표제적 테마를 활용한 이번 앨범에서는 음악적 묘사와 시각적 이미지 사이에 거리나 공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줄 만큼 음악 그 자체가 주는 연상 효과 또한 특징적이다. 또 다시 한 동안 이어질 그레이엄의 침묵이 벌써부터 아쉽다.


2017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