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ound

Laurence Pike & Cameron Deyell - Isola (Endless, 2022)

호주 드러머 겸 프로듀서 Laurence Pike와 기타리스트 겸 작곡가 Cameron Deyell의 듀엣 앨범. 로렌스와 카메론은 20년 이상의 음악적 협력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전해지지만, 그 구체적인 작업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을 찾기가 쉽지 않다. 둘은 재즈를 공통적인 음악적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각자가 자신의 분야에서 이룬 성과는 다양한 분야에 걸쳐 포진해 있으며, 이는 특히 최근 이들이 선보였던 작업에서 더욱 큰 간격을 보여주는 듯하다. 하지만 이번 앨범에서는 이와 같은 둘의 음악적 차이는 전혀 문제 되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둘 사이의 음악적 간극을 활용해 예상외의 창의적 시너지를 완성하고 있는데, 장르 다면적인 융합에서 보여줄 수 있는 유연한 접근이 이번 작업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다. 듀엣이라는 형식적 구성을 취하고 있지만 연주는 다층의 레이어와 복합적인 공간 분할을 활용하고 있으며, 여기에 Jasper Leak가 부분적으로 베이스/피아노/키보드/기타 등의 연주를 더해 구조화된 체계를 더욱 정교하게 만들고 있다. 처음 들었을 때는 로렌스가 완성한 일렉트로닉의 공간에 카메론의 연주가 더해지는 단순한 구조처럼 보였지만, 상대의 양식에 대한 기능적인 상호보완을 통해 인과성과 유기성을 끊임없이 확장하고 있어, 첫인상과 달리 이들의 연주는 무척 다양한 변수들의 집합처럼 보이기도 한다. 전자 기타의 딜레이나 디스토션을 길게 늘인 듯한 다양한 유형의 사운드는 드론과 같은 효과를 연출하며 곡의 배경을 완성하기도 하고, 반복적인 펄스의 샘플링을 이용한 루프 또한 독특한 앰비언스를 구성하여 전체적인 곡의 분위기는 마치 일렉트로닉이나 앰비언트를 연상하게 하는데, 그 안에 개별 악기의 연주 공간을 다양한 방식으로 배열하여 복합적인 장르적 특성을 자연스럽게 수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다면적인 특징은 때로는 사운드 그 자체의 특성에 의해 연출되기도 하고, 드럼과 퍼커션의 비트 분할 패턴에 의해 그 인상이 좌우되는가 하면, 연주를 통해 표출되는 장르적 양식은 물론, 통합적인 앙상블과 하모니 등, 다양한 요인의 중첩을 통해 드러난다. 일렉트로닉의 독특한 텍스쳐와 하모닉스에 의해 연출된 공간은 임프로바이징의 모티브를 활용한 프레이즈의 전개가 진행되는 순간에도 연속적인 굴절을 일으키며 미묘한 상호작용을 통해 다면적인 이미지를 연출하는가 하면, 때로는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고전적인 연주의 어프로치가 굳건한 배경을 압도하며 선명하게 자기 존재를 드러내기도 하는 등, 획일화된 구성 형식에서 벗어난 유연성을 보여주며 복합적인 특징을 더 강하게 부각한다. 전체적인 인상은 다분히 터프하면서도 실험적인 양식들도 병행하고 있어 조금은 복잡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사운드를 배열하고 진행을 구조화하는 방식에서는 무척 치밀한 태도를 보여준다. 때문에 이와 같은 대목에서 초기 ECM 뮤지션들을 중심으로 진행된 일련의 음악적 융합의 실험들은 물론 유럽의 일렉트로닉 뮤지션들이 완성한 구조화된 체계에 기반한 접근들이 연상되기도 하지만, 로렌스와 카메론의 방식이 한층 더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양식들을 포괄하고 있으며 보다 현대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사실이다. 다양한 장르적 양식들을 포괄하고 있지만, 구조화된 공간 안에서 체계화된 구성을 통해 내면화된 방식으로 표현의 일관성을 지속하고 있으며, 이는 정서적 균일함으로 드러나게 되어 나름의 훌륭한 몰입을 제공하기도 한다. 특히 ‘섬'과 ‘고립'이라는 두 가지 중의적인 의미를 내포하는 앨범의 타이틀을 통해, 현재 자신들이 생활하는 지리적 조건에서 기후 환경의 변화와 관련해 겪은 경험들을 몽환적인 톤으로 반영하고 있어, 앨범이 담고자 하는 주제 의식을 분명히 하기도 한다. 신비주의적인 세계관을 통해 다양한 양식을 융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강한 중력이 작용하는 듯한 무게감을 함께 지니고 있어 독특하면서도 인상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앨범이다.

 

2022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