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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Luum - The Guide (Playground, 2022)

에스토니아 재즈 트리오 Luum의 앨범. 룸은 젊고 유능한 피아니스트 겸 키보드 연주자 Madis Muul이 몇 년 동안 수행했던 작곡 프로젝트의 완성을 위해 결성한 트리오로, 드럼 Karl-Juhan Laanesaar와 베이스 Andres Alaru 등 현지에서 재즈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인 기량 있는 뮤지션의 조합으로 이루어졌다. 앨범은 트리오 녹음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곡의 성격에 따라 트럼펫 Allan Järve와 플루트 Markus-Anthony Eermann을 통해 공간과 표현을 확장하는 방식도 보여준다. 트리오의 연주는 재즈를 바탕에 두고 미묘한 뉘앙스를 품으며 발현되는 록, 민속, 클래식 등의 요소들이 에소테릭 한 공간 속에서 융합을 이루며 임프로바이징의 모티브를 확장하며 연주를 진행하는 방식이 특징이다. 마디스 스스로 우주 신비주의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히는 이러한 분위기는 다양한 장르적 경험을 지닌 뮤지션들의 참여로 어쿠스틱과 일렉트로닉의 공존을 통해 완성하고 있다. 폭넓은 음역대를 촘촘하고 자유롭게 활용하면서도 섬세한 싱코페이션과 벨로시티의 조율로 풍부한 뉘앙스를 담아내는 마디스의 연주가 전체 진행을 추동하며, 베이스와 드럼의 능동적 반응과 직관적 개입을 감행한다. 하나의 곡 안에서도 베이스는 다양한 주법을 이용해 곡의 표현을 다채롭게 구성하는 모습을 보여주는가 하면, 드럼 또한 곡에 따라 극단적인 방식으로 여백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일렉트로닉의 활용에서도 무척 섬세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단순한 사운드스케이프의 구성을 넘어서, 해당 공간의 유연한 활용을 위한 직접적인 계기로 작용하는가 하면, 진행 방식의 구성을 전환하며 분위기의 반전을 이끄는 요인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전체적인 트리오의 연주에서 템포의 완급은 물론 밀도를 응집하고 긴장의 평형을 이어가는 방식에서 무척 유연하면서도 놀라운 일체감을 보여주고 있어, 자율성과 유기성을 동시에 포괄하며 EST가 개방한 낭만적 역동성을 자신들의 언어로 재구성한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이러한 분위기는 트럼펫이나 플루트가 함께하는 공간에서 더욱 호소력 있고 다면화된 표현으로 재현된다. 이와 같은 편성의 확장은 단순히 트리오의 연장이 아닌 쿼텟 고유의 언어를 통해 완성되는데, 특히 임프로바이징의 모티브를 확장하는 공간에서 두 개의 멜로디 악기가 완성하는 대칭적인 라인을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풍부한 뉘앙스와 다면적인 분위기를 응집하기도 하는데, 특히 플루트와 함께 진행된 연주에서는 마치 초기 아트-록을 연상하게 하는 기묘한 황홀을 경험하기도 한다. 특히 서정적이면서도 낭만적 비장함이 감도는 매력적인 테마에 의해 추동되는 연주들이라 강한 매력을 함축하고 있다. 롱런했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트리오다.

 

2022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