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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Manet - Devour (self-released, 2017)


노르웨이 출신 Henrik Opheim Hegre의 솔로 프로젝트 그룹 마네의 세 번째 정규 앨범. 인상주의 화가의 이름을 차용하긴 했지만 헨릭의 음악과 에두아르의 그림 사이에는 특별한 연관성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에두아르의 화려한 색체에 비교하면 헨릭의 음악은 세츄레이션 -80에 근접한 회색빛이다. 2013년부터 이어진 일련의 앨범과 싱글들을 통해 '장르' 내에서는 나름의 고정 마니아를 확보한 그룹이지만 헨릭 자신이나 그룹 자체에 대해 알려진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또 한 가지 난감한 사실은 앞에서 작은따옴표 친 장르 역시 다양한 경향성으로 포괄되는 모호한 영역이라는 점이다. 그래도 일단 그의 음악을 들은 청자들의 입장에서 몇 개의 단어를 차용하면 다크 앰비언트나 둠 재즈 등과 같은 비장르적 표현들이 등장한다. 비록 음악 장르를 지칭하는데 있어 일종의 오용이긴 하지만 이러한 통용 외에는 그의 음악을 설명하기에 보다 적합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일단은 이러한 단어들을 통해 마네가 이번 앨범을 포함해 지금까지 선보였던 음악적 분위기나 특징에 대한 스케치가 완성되기 때문이다. 많은 앰비언트 뮤지션들이 음악적 표제에 부여하는 콘텍스트적 의미를 음악적으로 재현하[거나 혹은 그 반대의 방식을 취하]는 것처럼 마네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는 어둡고 암울한 분위기를 극한까지 몰고가지 않는다. 대신 순간의 동요나 미동도 없이 일관된 분위기로 단순 명료한 선을 이어 그린다. 암울한 분위기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차분한 적막감이, 우울한 감정과 평행을 이루는 듯한 편안함이 공존한다. "Delirious and Devoured"나 "Zygomatic Bones for Days" 같은 곡에서 간헐적으로 읊조리는 듯한 색소폰은 마치 오랜 침묵 속에서 힘겹게 몸 밖으로 나온 감정 표현처럼 느껴진다. 음악적 완성도 면에서 간혹 귀에 거슬리는 허점을 지적할 수도 있겠지만 음악 그 자체의 단순한 효과 면에서는 인상적인 것은 분명하다(물론 이러한 인상은 각자의 취향에 의존하는 영역이다).


2017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