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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Masabumi Kikuchi Trio – Sunrise (ECM, 2012)


일본인 피아니스트 마사부미 기쿠치의 ECM 데뷔 앨범이자, 고 Paul Motian의 공식적인 마지막 레코딩. 폴 모션과 기쿠치의 인연은 1990년대 초 Tethered Moon 시절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오래 되었다. Gary Peacock이 참여했던 TM 트리오와는 달리 이번 앨범에서는 Thomas Morgan이 베이스로 참여한다. 차이는 여기에서만 머물지 않는다. 기존 TM의 앨범들이 커트 웨일, 에디트 피아프, 지미 헨드릭스 등의 대상을 지녔다면 이번 앨범 만큼은 기쿠치 자신의 음악적 영감과 그 표제들이 유일한 대상이다. 이는 TM 트리오 시절 뿐만 아니라 폴 모션의 타이틀로 발매되었던 기쿠치의 참여작들과도 확연히 다른 점을 보여준다. TM 트리오만 보더라도 마치 사무라이 검 위에서 건반이 춤을 추는 듯한 과감함과 날카로움이 뽑아내던 프레이징 대신, 이번 앨범에서는 끊임 없이 내면으로 천착해 들어가며 만들어지는 추상적 순환들이 이어지고 있다. 때로는 신경질적이고, 종종 망설이기도 한다. 그만큼 이번 앨범에서는 더 솔직한 내면의 표현이 드러나고 있는 듯 하다. 폴 모션의 드럼은 마치 모든 상황을 관조하는 듯한 태도로, 전혀 조급하지 않고 그렇다고 여유를 부리는 것도 아니다. 상황에 가장 적합한 절적한 개입,이라는 표현 외에는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침묵 속에서 끊임 없이 수화로 이어지는 대화를 보는 듯, 내면의 언어가 소리로 표현된 듯한 앨범이다. 들려줄 이야기가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은데, 그 이야기 더 이상 들을 수 없으니 아쉬울 따름이다.


2014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