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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Max Richter - The Blue Notebooks (15 Years Edition) (Deutsche Grammophon, 2018)


영국에서 활동 중인 독일 출신 작곡가 막스 리히터의 재발매 앨범. 2004년 발표된 이 앨범은 리히터의 대표작 중 하나로 손꼽힐 뿐만 아니라 21세기 이후 발표된 현대 작곡 작업 중 중요하게 언급될 작품의 하나이기도 하다. 또한 이 앨범을 통해 리히터는 세계적인 현대 작곡가의 한 사람으로 인식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한다. 이 앨범은 2003년 이라크 침공을 바라보며 어린 시절 경험했던 폭력에 대한 기억과 연관해 1주일 만에 작곡한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와 친숙한 여배우 Tilda Swinton이 참여해 카프카의 The Blue Octavo Notebooks와 체슬라브 밀로즈의 Unattainable EarthHymn Of The Pearl에 수록된 메시지를 읽어 내려가는가 하면 비정통적인 작법으로 작곡가의 음악적 시퀀스를 이어가는 방식 등을 통해 현대 고전음악의 새로운 가능성을 시사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2014년에는 앨범 발매 10주년을 기념해 "On The Nature Of Daylight" 오케스트라 버전이 추가된 재발매가 이미 있었다. 그리고 올해 "A Catalogue Of Afternoons"와 Jlin과 Knox-Om-Pax의 리믹스 버전 등을 포함한 여러 곡을 별매로 담아 2LP 형식으로 다시 발매가 이루어진다. 이토록 꾸준하게 이 앨범이 회자하고 관심을 끄는 것은 저항적 메시지의 서정적 표현뿐만 아니라, 음반 전체의 완결적 구성은 물론 개별 곡이 지닌 미적 가치 때문일 것이다. 앨범 전체는 하나의 순환적인 시퀀스를 구성하며 마치 꿈과 현실을 반복해서 오가는 듯한 전개를 보여주고 있으며 그 내부는 다양한 이미지와 상상의 가능성을 개방하고 있다. 그 과정 중간에 스윈튼의 목소리는 개인의 상상과 작가의 의지 사이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장치처럼 활용되기도 한다. 또한 "Shadow Journal", "Organum", "On The Nature Of Daylight" 같은 곡은 여러 영화나 다큐멘터리 등에 최근까지 등장하며 꾸준한 메시지의 재생산을 이룬다. 개인적으로 가장 잊지 못하는 장면은 2017년 3월 30일, 1073일 만에 세상의 빛을 보게 된 세월호의 인양 소식이 전해지던 날, 뉴스룸의 엔딩 곡으로 "On The Nature Of Daylight"가 흐르던 순간이다. 그날을 위해 오래전부터 이 음악이 존재했던 느낌이었다.


2018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