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ound

Meredi - Trance (Modern, 2021)

Meredi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인 독일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Ina Meredi Arakelian의 앨범. 10여 년 전부터 연극과 영화를 위한 음악을 쓰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커리어를 성장시켜오던 중 작년에 발매된 Stardust (2020)는 젊은 신인 메레디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앨범은 그녀의 두 번째 앨범으로, 전작이 감성적인 섬세함을 지닌 연주자의 면모와 시적인 예민함을 담아내는 작곡가로서의 재능을 동시에 보여준 작업이라면, 이번 녹음은 메레디의 음악이 모던 클래시컬 장르 내에서 어떤 위상을 지닐 수 있는지를 확인시켜주는 듯한, 또 다른 의미에서의 놀라운 성과를 지니고 있다. 전작의 경우 솔로라는 공간을 온전히 자신의 연주로 채색했다면 이번 녹음에서는 다양한 현악은 물론 섬세한 일렉트로닉과 효과와 보이스 등 풍부한 하모니와 배음을 활용해 더욱 입체적이고 볼륨감 있는 음악적 경험을 제공한다. 독일의 유명 클럽 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전해지는 이번 앨범의 타이틀은 테크노 레이브에 담긴 강렬함과 파워를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고 싶었다는 메레디의 음악적 열망이 담겨있는데, 그렇다고 전자음악 특유의 그루브와 비트와는 전혀 거리가 멀다. 철저히 고전적인 문법에 근거해 메레디의 언어로 구성된 음악은 미니멀리즘의 통상적인 규범적 용례를 따르는 듯 보인다. 명료하게 제시된 테마를 반복적으로 전개하고 이를 확장하는 방식은 루프를 통한 플로우와 빌드-업을 이어가는 댄스 플로어를 위한 일렉트로닉과 형식적인 유사함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만 메레디는 고전적인 연주 악기의 특징들이 강조되는 편곡 양식을 통해 여러 현악기를 확장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고 있고, 여기에 세밀하게 조율된 일렉트로닉을 이용해 배음이나 사운드 스케이프 등의 디테일을 구성함으로써 그녀만의 음악적 창의를 완성하고 있다. 고전적인 양식의 엄밀함은 물론 현대적인 창의적 영감을 포괄하고 있어 모던 클래시컬이나 현대 작곡의 중요한 성과 중 하나로 언급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고해상도 음원의 경우 앨범이 담고 있는 사운드의 폭넓은 다이내믹 레인지로 인해 저역에서 고역에 이르는 풍부하고 섬세한 음향 그 자체가 제공하는 쾌감 또한 상당하다. 주말부터 지금까지 거실 시스템과 데스크 모니터, 이어폰과 헤드폰, 유선과 무선 등을 번갈아 가며 이토록 반복해서 수십 차례 들었던 앨범은 정말 오랜만이다. 

 

2021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