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토니아 베이스 연주자 겸 작곡가 Mingo Rajandi의 앨범.
2000년대 중반부터 음악 활동을 시작한 밍고는 밴드의 고정 멤버는 물론 자신의 그룹을 이끌며 연주와 작곡을 담당했다고 한다. 2010년대 초 작곡과 졸업 이후 현대 클래식과 재즈 분야의 뮤지션들과 함께 결성한 10인조 Avarus Ensemble은 장르 통합적인 언어 외에도 일렉트로닉과 어쿠스틱의 사운드를 통합하는 창의적인 표현을 선보이면서, 밍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녀는 연극학 및 더블베이스 연주 관련 음악학 학위를 비롯해, 현대 작곡 석사 학위를 보유한 것으로 전해지며, 배우, 작가, 안무가 등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과 협업 및 공동 프로젝트에도 활동적인 이바지를 하기도 한다.
다양한 아티스트와의 협연은 밍고의 음악에도 반영되어 재즈의 즉흥성을 활용한 그룹을 비롯해, 남미 음악의 특징을 강조하는 트리오는 물론, 현대 음악과 실내악, 연극 및 영화를 위한 음악 작업에도 참여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밍고는 인문학적 소재에 많은 관심이 있다고 밝히고 있는데, 특히 언어, 문학, 시 등은 자신의 음악적 영감에 중요한 원천이라고 하며, 사회 현실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음악을 통해 전달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이번 앨범 또한 그녀의 다양한 음악적 관심을 비롯해 사회 현실에 대한 우회적인 의견 전달을 담고 있다.
이번 앨범에 대해 “그리스 비극의 여주인공이 직면해야 했던 극단적 죽음을 현대 여성의 시선에서 바라본 작품”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녹음은 보컬이나 내레이션 없이 이루어졌지만, 진행 중인 공연에서는 배우 Eva Koldits의 가사와 함께 연주를 펼친다고 한다. 앨범에는 기타 Erki Pärnoja, 클라리넷 Meelis Vind, 색소폰 Tobias Tammearu, 트롬본 Johannes Kiik, 첼로/비올라 다 감바 Villu Vihermäe, 드럼/퍼커션 Ahto Abner 등, 지금까지 밍고와 다양한 활동을 공유했던 현지 최고의 뮤지션들이 참여하고 있다. 밍고의 모든 프로젝트가 그러하듯, 이번 작업 또한 나름의 고유한 성격을 명확히 하고 있는데, 클래식 양식의 편곡을 활용해 민속과 재즈적 요소를 더한 현대 작곡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앨범은 여러 장르의 요소적 특징을 다루면서도, 이를 엄격한 규범적 방식에 따라 현대적인 앙상블의 형식으로 조직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앨범은 장르적 다면성과 더불어 개별 곡이 지닌 고유한 성격을 강조함으로써 다채로운 분위기도 함께 표출하고 있어, 개별 트랙에 따라 민속, 모던 클래시컬, 재즈, 록 등의 요소적 특징이 부각되기도 하고, 기악적 특징과 고유의 텍스쳐를 활용한 실험적 접근도 포함하는데, 때로는 묘한 점층으로 그 경계를 흐리거나 혹은 병렬로 극적 전환을 이루는 등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다양한 장르적 표현을 다루면서도 이를 조직적으로 규범화하는 방식에서의 놀라운 치밀함은 7인 구성의 작은 오케스트라를 보는 듯하다. 각 곡의 특징에 따라 편성을 다변화하여 개별 악기의 기능적 역할과 기악적 배열도 세분화된 조율이 이루어지고, 이에 따른 공간과 사운드 연출도 달리하는 정갈한 완성미를 보여준다. 어쿠스틱에 바탕을 둔 연주 중심의 편성에 일렉트로닉의 섬세한 개입을 통해 공간의 밀도나 질감을 구체화하는 등의 섬세함을 보여주면서도, 과하지도 않고 부족함도 없는 균일한 에너지를 통해 연주 자체에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와 같은 앙상블의 엄격함은 듣는 이로 하여금 격식을 갖춘 감상을 요구하는 듯하지만, 이러한 무대와 객석으로 비유할 수 있는 거리감은, 오히려 온전한 몰입에 큰 역할을 한다. 장르적 복합성이 이루는 에소테릭 한 신비감은, 공간과 사운드 연출에서의 정갈한 완성을 통해 설득력 있는 표현으로 전해지며, 앙상블의 엄격한 규범을 가능하게 하는 개별 연주자들의 뛰어난 기악적 재능을 엿보는 것도 흥미롭다. 진지하면서도 이를 담담하게 전달하는 독특한 음악적 에티튜드가 매력적인 앨범이다.
20230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