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Mortiz Fasbender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활동을 시작한 독일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Friederike Bernhardt의 미니 앨범. 프리데리케는 어린 시절 피아노를 공부했고 전자음향 및 작곡을 전공한 이후 2000년대 말부터 영화를 비롯해 연극 무대를 위한 작곡가로 일했으며, 피아노와 라이브 일렉트로닉을 위한 곡을 선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시기 그녀의 음악과 관련한 공식적인 릴리즈는 존재하지 않으며 부분적인 기록만으로 그 성과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때문에 모리츠라는 그녀의 또 다른 자아는 자신의 음악을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는데, 그 첫 작업은 Deutsche Grammophon에서 Erik Satie 곡을 대상으로 여러 전자음악가들의 리믹스 작업을 수록한 Fragments (2021)를 통해서였고, 두 번째는 올해 피아노 데이 행사를 기념하기 위해 Nils Frahm이 큐레이팅 한 Piano Day, Vol. 1 (2022)이었다. 비록 여러 음악가들과 함께 발표한 앨범에 수록된 싱글이었지만, 해당 컴필레이션이 지닌 에디터의 권위와 여기에 수록된 뮤지션들의 쟁쟁한 이름들 중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모리츠에 대해 현재의 음악계가 갖는 기대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을 듯싶다. 이번 작업은 정규 릴리즈에 앞서 발매한 EP 형식이지만, 레이블이 지향하는 모던 클래시컬 계열의 뛰어난 젊은 뮤지션들의 작업을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기획된 XXIM:EXPO 시리즈로 선보이고 있어, 그녀의 위상에 대한 짐작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 작업을 들어보면 모리츠를 단순히 기대나 가능성만으로 평가하기에는, 이번 EP에서 보여주고 있는 재능과 성과는 완성형에 가까운 인상적인 창의를 포함하고 있다. 앨범 커버에서도 볼 수 있듯이, 모리츠는 그랜드와 로드 스테이지를 비롯한 여러 개의 신서사이저와 모듈러를 포함한 장비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와 비슷한 악기 구성을 지닌 다른 뮤지션들이 보여주는 활용 방식보다 더 유연하면서도 응집력 있는 사운드를 완성하고 있다. 각각의 악기 특성에 맞게 공간과 위상을 분할하여 그 기능적 역할에 집중하는 방식과는 달리, 모리츠는 모든 장비를 통합적으로 운영하면서 폴리포닉 한 톤과 텍스쳐를 만들고 있다. 그랜드는 그 고유한 울림만으로 존재하는 대신 리버브 속에서 일렉트로닉과 독특한 하모닉스를 이루며 사운드가 굴절되기도 하고, 짧은 타건의 스타카토조차 다양한 효과를 통해 굴절된 음향과 점층적 구조를 이루며 다층적인 이미지의 공간 속에서 융합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랜드의 서스테인 테일과 자연스럽게 중첩되는 일렉트로닉의 레이어는 물론, 필드 리코딩을 샘플링하여 이를 주변적인 효과처럼 이용하거나 공간을 재구성하기 위한 모티브로 활용하는 등, 섬세한 사운드의 완성 및 진행에서의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빌드-업 또한 인상적이다. 다층적인 사운드의 조합이 보여주는 집약적인 공간 구성임에도, 그 폭과 깊이를 유연하게 활용하고 있으며, 그 변화의 과정에서 보여주는 인과적 치밀함은 듣는 동안 자연스러운 몰입을 유도하는 중요한 요인이기도 하다. 복합적인 요소들을 활용하고 있음에도 이 모든 것들이 일체감 있는 느낌으로 전달되는 것은 피아노의 음향 및 표현력을 중심으로 점층적인 레이어를 구성하는 사운드에 대한 섬세한 접근 방식에 있으며, 이를 통합적인 공간 안에서 독특한 정서적 질감으로 완성하는 창의적인 모티브의 활용 역시 강한 인상을 남긴다. 4개의 트랙만으로도 모리츠의 매력을 경험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지만, 15분이라는 짧은 재생 시간은 그 몰입을 이어가기에는 전혀 충분하지 않다. 이것이 모리츠의 정식 앨범을 강하게 요구하는 이유다.
2022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