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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Nikol Bóková - Elements (Soleil et Pluie, 2023)

 

체코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Nikol Bóková의 쿼텟 앨범.

 

1991년생인 니콜은 5살 때부터 피아노를 접했고 이후 전문 음악 교육을 받은 연주자이자 작곡가이다. 클래식 교육을 바탕으로 하는 그녀의 연주는 바로크에서 현대 고전에 이르는 폭넓은 스펙트럼을 지니는 것으로 전해지지만, 재즈와 록 등과 같은 다양한 장르적 요소를 결합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적 세계관을 일찌감치 완성한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그녀의 첫 공식 음반 활동은 재즈의 작곡을 바탕으로 하는 트리오 앨범 Inner Place (2019)이었으며, 이어지는 Unravel (2020)를 통해 자신의 음악적 색을 더욱 견고하게 완성하기도 한다. 해당 앨범들은 베이스 Martin Kocián과 드러머 Michał Wierzgoń과 호흡을 이루며, 개방적인 공간 활용 속에서도 인터랙티브 한 재즈의 규범적 준칙을 유연하게 확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가 하면, 그 안에 클래식적인 요소와의 언어적 긴장을 미학적으로 자연스럽게 응집하는 인상적인 연주를 들려준다.

 

이어서 발매한 니콜의 Prometheus (2021)는 기존 트리오에 기타 David Dorůžka를 더해 쿼텟으로 확장한 새로운 접근을 선보이게 되는데, 네 개의 분할된 공간 속에서의 포착할 수 있는 상호 간의 자연스러운 음악적 개연성은 물론, 신화적 소제를 바탕으로 풀어가는 인상적인 음악적 전개 등은, 우리가 그녀의 음악과 연주에 주목해야 할 설득력 있는 이유를 충분히 제공하고 있다. 니콜은 이처럼 거의 매년 완성형에 가까운 음악적 성취를 선보이며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한편, 앨범 제작 과정에서 수반되는 자율성에 대한 필요에 직면하며, 연기자이자 비주얼 아티스트인 Jan Vala와 함께 자신의 레이블 Soleil et Pluie를 설립하게 된다.

 

이번 앨범은 SeP 레이블의 첫 번째 공식 릴리즈이자 니콜의 네 번째 타이틀이기도 하다. 이번 녹음은 기존 쿼텟과 같은 라인-업으로 완성했으며, 전작에서 신화적인 소제를 활용한 인식론적 사고를 음악으로 표현했다면, 이번 앨범에서는 고대 철학자들이 세계의 기본 구성 ‘요소’와 니콜의 주관을 더한 여러 모티브를 활용하고 있다. 이와 같은 소제나 모티브가 니콜의 음악에서 인상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단순히 이를 바탕으로 하는 상징적 테마를 완성하는데 그치지 않고, 연주와 그 형식을 통해 이를 재현한다는 점이다. 때문에 소제나 모티브 하나하나의 개별성보다는 그 복합적인 연관과 관계에 주목하고, 이를 자신의 사고를 통해 정돈한 일련의 개념적 표현을 제목과 연주로 일치시키는, 나름의 인과적 흐름을 완성하는 인상적인 지적 재능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주변 장르의 다양한 표현이 유기적으로 개입하는가 하면, 멤버들 상호 간의 인터랙티브 한 연관 또한 유연한 확장을 이루기도 하고, 결과적으로 전체적인 음악적 형상을 깊이 있고 입체적으로 완성하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마치 니콜 자신의 사고의 복합성이 음악적 표현의 다면성으로 드러나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하며, 동시에 구조적으로 유연하고 치밀한 아키텍처를 완성하면서도, 그 표현은 진솔하고 선명하게 전달하는 매력을 지니기도 한다.

 

때문에 이번 앨범에서 은연중에 드러나는 주변 장르의 다양한 표현들은, 그 자체로도 분명 매력적인 요인이기도 하지만, 나름의 음악적 개연성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규범적인 엄밀한 공간 운영을 전제하는데, 피아노와 기타가 프런트를 담당하고 베이스와 드럼이 뒤를 받쳐주는 전통적인 방식에 충실하면서도, 각자의 기능과 역할을 다양하게 변형함으로써 자율성이 발현할 수 있는 계기를 끊임없이 확장하는 유연한 과정을 통해 완성한다. 이 과정에서 뮤지션 개인의 취향이나 해석이 녹아들 수 있는 합의적 공간을 완성하고, 그 안에서 복합적인 장르적 표현이, 마치 하나의 집단적 합의에 따라 도출되는 듯한 자연스러운 음악적 내재화를 통해 드러나게 된다. 이는 작곡에 의한 의도일 수도 있으며, 공간적 합의를 완성하는 쿼텟 특유의 방식이기도 하는데, 그만큼 구성원들 상호 간의 긴밀하면서도 유연한 음악적 연관성이 핵심을 이루는 것은 당연하다. 이는 단순한 인터랙티브 한 의존성만으로 환원하기 어려운, 무척 다양한 방식을 통해 드러나는데, 진행 과정에서의 상대의 미묘함과 과감함을 마치 한 몸처럼 본능적으로 반영하여 가장 적합한 자율적 표현으로 표출하는 능동성은 물론이고, 음악적인 농도와 색감마저도 온전한 합의를 이루는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작곡의 의중을 직접 반영하는 두 프런트와 그 멜로디 라안이 진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는 구성이면서도, 베이스와 드럼의 안정적인 능동적 개입이 연주의 세심한 디테일과 뉘앙스는 물론 전체적인 분위기까지 전환하는 과감함을 담아내기도 한다.

 

앨범에 담긴 일곱 편의 오리지널 모두, 어느 곡 하나 서로에게 환원되지 않는 각각의 고유한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 모든 트랙은 저마다의 진지한 음악적 사유를 품고 있다. ‘요소’라는 은유적인 상징성을 지닌 모티브를 활용하고 있지만, 이 안에 담긴 음악적 아이디어는 풍부하면서도 무척 구체적이고, 그 진행은 무척 드라마틱하기까지 하다. 단 이틀 만에 이 모든 녹음을 완성했다고 전해지는데, 니콜의 뛰어난 음악적 창의성을 엿보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무척 매력적인 앨범이다.

 

 

2023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