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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Norma Winstone - Descansado: Songs for Films (ECM, 2018)


영국의 보컬리스트 노마 윈스톤의 ECM 신보. 1941년생이라고 소개는 하지만 여전히 깊이 있는 단정함을 내쉬는 그녀의 보이스 앞에서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John Taylor, Kenny Wheeler와 발매한 Azimuth (1977)를 시작으로 ECM의 역사와 동행했던 보컬리스트는 Glauco Venier (p), Klaus Gesing (ss, bcl)과 녹음한 Distances (2008)를 계기로 또 한 번의 순환을 레이블과 함께하고 있다. 이번 앨범은 베니에르, 게싱과 녹음한 윈스의 네 번째 타이틀로 Helge Andreas Norbakken (perc), Mario Brunello (violoncello) 등도 참여해 퀸텟 포맷으로 이루어진 리코딩이다. 경험해본 사람은 안다, 추억이 얼마나 잔인하고 예고 없이 삶에 개입해 때로는 일상을 흐트러뜨리는 지뢰 같은 존재라는 것을. 영화만큼 우리의 무의식 속에 자신의 존재와 더불어 주변 상황에 대한 상세를 강하게 각인하는 장치는 흔치 않으며, 음악 또한 만만치 않다. 둘이 만나면 더욱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에 영화 속에서 음악은 때로는 대사이며 연기이기도 하다. 윈스은 자신의 매력이 담긴 목소리로 우리의 무의식 속 흔적들을 소환하려 하고 있다. 앨범은 제피렐리, 고다르, 벤더스, 펠리니, 스콜세지 등 1960년대에서 2000년대에 이르는 11편의 영화 속에서 우리의 기억 속에 깊은 인상을 남긴 미셸 르그랑, 니나 로타, 엔니오 모리코네 등의 음악들을 담고 있다.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지는 않았어도 "What Is A Youth?"는 알고 있을 것이고, "So Close To Me Blues"라는 곡을 몰라도 '택시 드라이버'에서의 불면의 밤은 기억하고 있을지 모른다. 이 앨범은 이토록 불완전한 우리의 기억 속 조각들을 하나 둘 짜 맞추려는 도발을 감행한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이번 앨범에서도 피아니스트 게싱은 음악 감독의 역할을 수행하며 편곡까지 맡고 있고, 연주로만 이루어진 일부 원곡들을 윈스톤 자신이 직접 가사를 붙여 곡을 완성하고 있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999호에 탑승한 철이에게 '슬픈 기억도 때론 그리워질 때가 있다'라고 말한 메텔이 떠오르는 앨범이다.

2018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