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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Paul Saunderson - Memory Box: Echoes of 9/11 (Back Lot, 2021)

영국 작곡가 Paul Saunderson의 다큐멘터리 영화 음악. 이 앨범은 얼마 전 MSNBC를 통해 공개된 Memory Box: Echoes of 9/11 (2021)에 수록된 음악들을 담고 있다. 20년 전에 있었던 9/11테러는 어쩌면 전 인류에게 엄청난 집단적 트라우마를 경험하게 만든 사건이 아닐까 싶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도 TV로 생중계되는 화면을 통해 여객기가 WTC에 두 번째 충돌하는 장면과 이어진 건물의 붕괴의 순간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테러 20주년인 올해는 미국내 많은 방송은 물론 OTT에서도 당시의 테러와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선보였는데, 크게 기록으로 이를 접근하는 방식과 기억으로 당시를 회상하는 방법이 대비를 이룬다. 이 영화는 후자에 속한다. 테러 직후 설치 예술가 Ruth Sergel은 NYC, DC, PA 등 사건의 중심지역에 한 평 남짓한 크기의 합판으로 된 작은 방을 설치하고 그 안에 비디오를 통해 여러 생존자와 목격자의 기억을 저장했고, 그리고 최근 증언자 중 몇 명이 '메모리 박스'에 돌아와 지난 20년간 자신의 변화된 삶을 다시 회상하게 된다. 이 과정은 인터뷰가 아닌 스스로 녹화와 정지 버튼을 누르며 이루어지고 있어, 마치 독백을 통해 비극적인 트라우마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는 수없이 반복되는 음모론과 정치적 입장이나 편견에 따라 갈리게 되는 당시의 사건에 대한 평가를 감행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댓가로 평생 짊어지고 가야할 개인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게 만듦으로써 비극에 대한 보편적 공감을 유도하는 인간적인 방식의 회고이기에 인상적이다. 2-3분 전후의 길이로 이루어진 앨범의 수록곡들은 각 인터뷰에 맞춰 각자의 이야기에 담긴 비극적인 기억과 외상을 따라가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음악 자체가 적극적인 부연이나 개입을 철저히 피하는 대신 기억 이면에 드러나지 않은 채 여전히 억눌려 있는 슬픔과 고통을 어루만지는 듯한 작은 속삭임처럼 들린다. 작곡을 통해 무엇인가를 표현하기 보다 음악을 통해 생존자와 목격자의 슬픔과 고통에 공감 하고 있다는 느낌이 고스란히 전달되기 때문에 폴의 이번 앨범은 그 어느 때보다 진솔하게 들린다. 참여한 인물들은 각자 자신의 경험과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지만 이들이 하나 같이 하는 말은 괜찮지 않은 상황 속에서 적어도 괜찮은 척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가는, 어쩌면 우리 삶의 보편적 태도에 관한 것이 아닐까 싶다. 작곡가는 이를 "Learning To Be OK With The Not OK"라는 담담한 표현으로 정리하고 있다. 지금까지 선보인 폴의 작업 중 자신의 장점이 가장 잘 반영된 인상적인 앨범으로 손색이 없다.

 

20210914